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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32개국 중 한국만 '대외비'…투명성 후퇴 지적에 제도 개편론 부상
예산 70% 집중은 재원 부족 우려…일본·네덜란드식 '전략적 공개' 대안

(서울=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정부가 공적개발원조(ODA) 5조원 시대를 열며 외교 지평을 넓히고 있다. 하지만 세금을 어디에, 얼마만큼 쓸지 보여주는 정책 설계도인 '중점협력국' 명단은 비공개하기로 해 제도의 실효성을 두고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비공개 방침에는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가 자리 잡고 있다. 명단 공개에 따른 과도한 외교적 부담을 완화하고, 대내외 여건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취지다.
그러나 국제개발협력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방침이 국제사회가 공여국에 요구하는 투명성 원칙과 충돌한다고 우려한다. 원조의 '투명한 공개'는 협력국에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주는 약속이기 때문에 한국의 대외 신뢰도가 하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국제사회 '투명성' 원칙 역행 목소리…차기 OECD 평가 감점 우려
11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는 '동료검토 평가 기준'에서 "협력국에 대한 전략을 포괄적이고 공개된 문서 형태로 보유해야 하며, 공여국의 활동 정보를 대중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단순히 정부 내부 지침에 그치지 않고 국민과 협력국이 알 수 있도록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중점국 명단과 해당국에 대한 국가협력전략(CPS) 비공개는 OECD 대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2024년 OECD DAC의 '한국 동료검토 결과'에서도 이러한 우려가 확인된다. DAC는 "정책의 일관성과 책무성을 높이기 위해 투명성을 보장함으로써 시민사회와 대중을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자가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개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중점국 명단과 선정 기준 등 관련 정보를 모두 '대외비'로 부친 한국 정부의 방침은 국제사회의 공식적인 개선 요구와도 결을 달리하는 셈이다.
DAC 측은 향후 한국에 대한 동료검토 평가를 할 때 국가별 전략이 대중에 공개된 문서인지 여부를 중점적으로 평가할 계획인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방침대로라면 향후 동료검토에서 감점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제사회의 시선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GPEDC(효과적인 개발협력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 제4차 모니터링' 결과를 보면 글로벌 공여국들은 평균 72% 비율로 국가별 전략을 일반에 공개했다. 한국(71%)도 글로벌 수준의 투명성을 유지해왔으나, 향후 이 지표도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ODA 사업실명제·기록이력제, 사업 전 과정 정보공개 확대 등 투명성 강화 장치를 두고 있다는 입장이다. 주관 기관에 문제 사업 시정조치 요청 권한 부여 등 책무성을 높이는 제도 개선도 추진 중이라고 강조한다.

자국의 전략적 목표에 따라 ODA 파트너십을 재구성한 독일. 양자협력 파트너, 글로벌 파트너, 넥서스·평화 파트너 등 3개 틀로 구성. [독일 경제협력개발부(BMZ)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012030] 금지]
◇ DAC 32개국 전수조사…중점국 명단·우선 지역·전략 등 공개
개발협력 분야에서 중점국 지정은 공여국이 자국의 외교 전략과 예산 집중 방향을 대내외에 선언하는 전략적 장치로 여겨진다. 한국은 중점국으로 지정된 국가에 전체 ODA 예산의 70% 이상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형태로 운영한다.
연합뉴스가 DAC 회원국 32개국을 전수조사한 결과, 중점국 정보를 비공개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했다. 독일·영국 등 핵심국은 물론, 한국과 ODA 규모가 비슷한 스위스·호주 등도 중점국 명단이나 전략적 우선 지역, 국가별 전략 등을 공개한다.
독일은 'BMZ 2030' 전략을 통해 중점국을 85개국에서 60개국으로 줄여나가며 그 과정을 전부 공개했다. 어떤 국가와 왜 협력을 종료하고, 새로운 중점국은 어떤 전략적 가치가 있는지 등을 투명하게 알려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스위스는 중점국(34개국)·장기 위기국(7개국) 명단과 협력 전략을 공개하고, 연방의회 승인을 받는 구조를 갖고 있다. 호주는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견제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중점 전략을 내세우며 국가별 전략 등을 공개하고 있다.
헝가리·그리스·슬로바키아 등 중소 유럽 강국들은 ODA 예산 자체는 적지만, 자국 안보와 직결된 국가를 전략적으로 선택해 대외에 공표한다. 그리스의 경우 외교 전략과 비교 우위 분야 등을 고려해 연례보고서에 사업별로 중점국을 공개한다.

[네덜란드 외무부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 韓, 제도 개편 대신 비공개…글로벌 공여국은 '국가' 대신 '주제'
정부의 방침이 명단 제외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 등을 고려한 고육지책이라는 분석도 있다. 다만 이른바 '70% 룰'을 규정한 현 제도의 전면 개편 대신 비공개를 택해 결과적으로 정책의 투명성과 국제적 신뢰를 동시에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더 많다.
실제로 정부 내부에서는 지난 1∼3기 중점국 공개 운영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 제기가 꾸준히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유 재원이 부족해 정상외교 연계 사업 발굴 등에 있어 비중점국을 지원하고자 할 때 제약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개발협력계 전문가들은 제도 자체의 문제를 정보를 가리는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고 말한다. 명단에 얽매이지 않고 목표나 분야에 집중하는 일본과 네덜란드식 '전략적 공개'를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일본은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이라는 외교 대전략에 따라 ODA 대상국을 탄력적으로 선정한다. 고정된 국가 리스트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어떤 기준으로 예산을 배분하는지 모든 국가에 대한 전략을 공개해 외교 마찰을 방지하고자 한다.
가장 눈에 띄는 모델은 지난해 2월 신규 정책 문서를 발표한 네덜란드다. 네덜란드는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도 중점국 명단을 숨기지 않았다. 국익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강점이 있는 물관리, 식량안보, 보건 등 3대 분야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정책 수립 불투명성 거론…전문가들 "제도 재검토·투명성 과제"
이번 비공개 방침이 비판받는 배경에는 정책 수립 과정에서의 불투명성도 거론된다. 정부는 지난 2월 '제4차 국제개발협력 종합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비공개 방침을 명문화했으나, 시민사회·학계와의 공식 논의나 공론화 과정은 사실상 생략됐다.
이는 이웃 나라인 일본의 사례와도 대비된다. 일본 역시 최종 정책 결정권은 정부에 있지만, 정례적인 '외무성-NGO 정책협의회'를 통해 주요 ODA 정책 수립 초기 단계부터 민간의 목소리를 강력하게 반영한다.
일본 시민사회는 현장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부 정책에 강력한 견제와 균형 역할을 수행한다. 정부도 민간의 동의와 지지 없이는 정책 추진력을 얻기 어렵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 각종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민간 의견을 적극 참고한다.
반면 한국의 의사결정 기구인 국제개발협력위원회에 민간 위원들도 참여하지만, 의견 반영은 제한적이다. 정부 정책에 대한 의견 수렴과 의결에 그친다는 구조적 한계가 있어 실질적인 견제 장치의 기능은 수행하기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한국형 ODA가 진정한 실용 외교의 나침반이 되려면 15년간 이어져 온 국가 리스트별 지정 방식에서 탈피해 전면 재검토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세부 기준과 방식 설정 과정도 공청회 등을 통한 활발한 토론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곽재성 국제개발협력학회장은 "당장 중점국과 국가협력전략(CPS)을 비공개할 수는 있겠지만 CPS를 모른 채 시민사회나 학계 등에서 사업 기획이나 연구, 평가 등을 진행할 수 없다"며 "결국 모두가 아는 '비밀'이 될 것"이라고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 "개발금융이 도입되고 민간의 역할이 강조되는 등 원조 패러다임이 중대한 변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며 "과거 형태의 중점국 제도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개발협력계의 한 전문가는 "앞으로는 국가 리스트가 아닌 기후·공급망·보건·디지털 등 글로벌 어젠다와의 연계 구조로 전환될 것"이라며 "어떤 기준과 목표로 중점국이 선정·조정되는지 국민과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설명하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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