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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의 창] 광주 고려인마을, 독립유공자 '김덕선 선생' 재조명

입력 2026-03-05 08:3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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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지원 사업' 12번째 인물




매일신보에 실린 김덕선 선생 기사

(서울=연합뉴스) 1922년 6월 17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김덕선 선생에 관한 기사. [독립기념관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광주 고려인마을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과 함께 추진 중인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지원 사업' 열두 번째 인물로 김덕선 선생(1892~사망일 미상)을 선정, 조명한다.


1892년 강원도 이천군 탑리에서 태어난 선생은 김학영·김동훈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했다. 여러 이름으로 기록됐지만 그의 삶을 관통한 한 가지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는 의지였다.


1920년 6월 그는 정호섭·김언배·김재봉 등과 함께 '의연대'를 조직해 국내로 진입했다. 이후 함경북도 길주와 무산, 함경남도 단천·풍산·신흥·북청 등을 오가며 군자금을 모으고 동지를 규합했다.


같은 해 7월에는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대한신민단 산하 밍웽거우 참모본부 대장에 임명돼 독립전쟁 준비와 조직 확장에 힘을 쏟았다. 그는 무장투쟁과 함께 교육과 계몽 활동을 병행하며 독립운동의 기반을 다지는 데 힘썼다.


1921년 11월 함경남도 풍산과 북청 일대에서 무장 항일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결국 체포됐다. 이후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으며 항소는 기각됐다. 긴 수감 생활 속에서 그의 생애는 기록에서 점차 희미해졌지만, 조국 독립을 향한 그의 헌신마저 지울 수는 없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이천영 광주 고려인마을 이사장은 "기록 속에서 흐릿해진 이름을 다시 또렷이 새기고 비어 있던 역사의 공백을 채워갈 때 비로소 독립의 의미도 완성된다"고 강조했다.


phyeon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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