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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한국과 중국이 외교 접촉을 재개하는 계기가 된 1983년 '중국 민항기 불시착 사건' 당시 비행기 납치범과 단독 협상을 벌인 김응열(金應烈) 예비역 육군 중장이 3일 오전 3시40분께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만 95세.
1928년 5월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4년 중국에 있던 일본군 예비사관학교를 나와 38선 이북에 있던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1947년 말 월남했다. 1948년 하사관교육을 받은 뒤 조선경비대(국군의 전신) 7연대 중사로 입대했고, 6·25 전쟁 중 육군제병학교(1기)를 거쳐 중대장으로 동해안진격작전·백암전투·원산 탈환작전 등에서 전공을 세웠다. 베트남전쟁에도 참전했다. 육군 36사단장,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육군대학 총장, 1982∼1984년 제2군단장, 육군교육사령관을 지낸 뒤 1986년 예편했다. 2군단장 때 북한의 공격로를 차단하기 위해 비무장지대 부근에 쌍용댐을 건설했다.
역시 2군단장이던 1983년 5월5일 납치범 6명이 중국 민항기를 납치해 대만행을 요구하며 춘천 미군기지에 불시착했을 때 비무장 상태로 통역관 1명, 연합사 작전참모 1명과 함께 비행기 안에 들어가 3차례 협상을 벌인 끝에 탑승객 전원을 경찰에 인계했다. 중국은 1953년 휴전 후 한국과 공식 접촉한 적이 없었지만, 비행기 승객 중 미사일 전문가를 구해내려고 적극 협상에 임한 덕분에 양국 간에 외교 전문이 오갔다. 승객은 모두 중국으로 돌아갔고, 납치범들은 한국에서 복역 후 대만으로 추방됐다. 이에 대한 답례로 중국은 사건 다음 해(1984년) 공산권 국가 중 처음으로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참가를 선언했다.
유족은 부인 안덕순씨와 사이에 2녀(김기주·김기원)와 사위 김종배(전 계명대 교수)·이동형(한밭대 교수)씨 등이 있다. 빈소는 대전성심장례식장 VIP2호실, 발인 5일 오전 7시, 장지 국립대전현충원. ☎ 042-522-4494
※ 부고 게재 문의는 팩스 02-398-3111, 전화 02-398-3000, 카톡 okjebo, 이메일 jebo@yna.co.kr(확인용 유족 연락처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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