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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로] 바주키 가족의 기적…조울증 완치 길 열릴까

입력 2026-10-01 07: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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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백약 무효였던 아들 조울증, 식단으로 몇 달만에 극복


식이요법 연구재단 세워 정신질환 완전정복 향해 진력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세계 수억명 아동 청소년이 즐기는 메타버스 게임 '로블록스' 창시자 데이비드 바주키 최고경영자(CEO)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억만장자다. 아쉬울 것 하나 없을 듯하지만 의외로 그에게도 큰 우환이 있었다. 아들 맷이 10대 후반에 제1형 양극성정동장애(조울증) 진단을 받고 5년 넘게 약물 치료를 받으며 여러 번 입원을 반복했다. 조울증은 약물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아들에겐 약이 잘 듣질 않았다. 정신과 의사들은 평생 대여섯 가지 독한 약을 달고 살아야 겨우 일상을 유지할 수 있고 완치는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데이비드 바주키 로블록스 CEO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DB 금지]


바주키는 형언할 수 없는 절망감과 무기력감에 무너져 내렸다. 글로벌 빅테크를 맨손으로 키워낸 비범한 엔지니어이자 경영자로서 "불가능은 없다"고 믿어왔는데, 정작 아들 문제 하나 해결 못 하는 현실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 최고의 정신과 전문의들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표준 약물 처방과 심리 치료를 받고 이를 잘 따랐는데도, 아들의 상태가 호전되긴커녕 점점 나빠지자 절망과 불신이 더 커졌다. 백약이 무효인 듯한 치료 시스템을 점점 더 믿기 어려웠다고 한다.


특히 아들 맷은 병세가 최악에 달했을 무렵엔 일상생활을 잘하지 못하는 건 큰 문제가 아닐 지경이 됐다. 가정의 울타리를 뛰쳐나가 거리를 배회하거나 연락 두절된 채 노숙자처럼 지내다 극적으로 발견되는 등 안전과 생명마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바주키 부부는 아들이 학업이나 사회생활로 복귀할 거란 기대는 아예 접었다고 한다. 그들에겐 아들이 혹시나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뇌 손상을 입거나 사고 또는 자살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만 남아 노심초사하는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그런데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났다. 2021년 시작된 크리스 파머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와의 인연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꿨다. 바주키의 아들은 파머의 진단과 처방대로 탄수화물 섭취를 최소화하고 지방 섭취를 극대화하는 의료용 케토제닉(속칭 저탄고지) 식단을 시도했다. 놀랍게도 불과 몇 주 만에 증상이 거짓말처럼 호전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몇 달 만에 사실상 완치 상태를 일컫는 '관해'(remission)로 판정받았다. 세계 최고 의료진들이 5년 동안 개선하지 못했던 난치성 조울증을 단 몇 개월 안에 극복한 것이다. 다만 정신과 약 자체는 의사의 지도 아래 점진적으로 줄여나갔다. 지금은 약을 끊고 식단으로만 정상 상태를 유지 중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새 치료법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 바주키 가족과 대사질환이 정신병에 미치는 영향을 평생 연구한 의사의 노력이 만나 값진 열매를 맺었다.


평생 장애를 겪거나 자칫 죽을지 모른다고 걱정했던 아들이 멀쩡해진 모습을 본 부모라면 다 비슷한 심경일 듯하다. 기적에 감사하고 보답하며 살겠다는 생각이지 않을까. 바주키도 개인의 기적을 사회 공헌으로 승화하기로 했다. 거액을 출연해 정신질환 연구를 지원하는 '바주키 그룹' 재단과 '메타볼릭 마인드' 플랫폼을 파머 박사와 손잡고 설립한 것이다. 재단은 케토제닉 식단과 뇌 대사 의학 연구를 지원 중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이단시됐던 '뇌 대사 정신의학'과 정신 식이요법은 주류 의학계로 빠르게 진입해 정신질환 치료의 새 장을 열었다. 조울증, 우울증 등이 단순 심리 문제가 아니라, 뇌세포 에너지 결핍, 인슐린 저항성 등 뇌세포의 대사 기능 이상과 직결됐다는 이론은 임상 효과를 인정받고 있다.




조울증

[출처: 서울아산병원]


기적을 만든 케토제닉 식단은 원래 뇌전증(간질) 치료를 위해 고안됐다. 단식하면 뇌전증 발작이 감소하는 현상에서 착안해 탄수화물 대사가 아닌, 지방을 태워 '케톤체'를 만들고 이를 뇌 연료로 쓰는 방식이다. 바주키의 아들은 케토제닉 식단 초기엔 증상이 다소 오락가락했으나 불과 몇 주 만에 뇌 속 염증이 신기하게 사라지고 신경계가 안정되면서 조울증이 함께 없어졌다. 최신 의학 이론에선 간질, 조울증, 조현병의 일부 기전이 비슷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일부 약제를 공유할 뿐 아니라 케토제닉이 조울증에 유효했던 이유도 어느 정도 규명됐다.


뇌 대사 정신장애 이론은 이미 정설이 된 '장-뇌-축' 이론과 만나 정신질환 치료의 신기원을 열고 있다고 한다. 장-뇌-축은 장(腸) 생태계(마이크로바이옴)와 뇌가 신경·면역·호르몬계로 이어진 전용 고속도로를 통해 실시간 양방향 소통하며 상호 작용한다는 이론이다. 즉 과당, 정제 탄수화물, 튀긴 음식 등 나쁜 음식을 먹어 장내 환경이 나빠지면 뇌에 직접 이상을 유발해 정신질환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당신이 먹는 음식이 당신을 만든다'(You are what you eat)는 경구는 이렇게 현실 속에서 입증되고 있다.


바주키는 지금도 정신질환 극복에 공헌하고자 노력을 쏟고 있다.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는 건 물론 가족 구성원들이 직접 강연에 나서기도 한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정신건강 문제로 진료받은 사람은 약 433만 명에 달했다. 이는 10년 전보다 50%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특히 조울증 환자는 작년 14만 명을 돌파해 10년간 2배가량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정신질환은 중대한 사회 문제가 됐다. 자살 증가와 직접 연관됐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하루빨리 조울증을 비롯한 난치성 정신질환이 완전히 정복되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온 가족이 두 팔 걷어붙이고 뛰는 바주키 가(家)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우울함(PG)

[권도윤 제작] 일러스트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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