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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 칼럼에 초등학교와 중학교 단계에서 학생에게 어떤 식으로 인공지능(AI) 교육을 해야 할지 의견을 밝혔다. 고등학교에 이르면 다시 문제가 달라진다. 특히 일반계와 실업계 고등학교를 하나의 AI 교육으로 묶어서는 곤란하다.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는 교과의 기초지식과 탐구 능력을 충분히 갖추는 것이 여전히 중요하다. 동시에 그 지식을 바탕으로 AI를 이용해 자료를 찾고, 가설을 세우고, 여러 해석을 비교하고, 결과를 검증하는 경험을 본격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목표는 AI에게 답을 받는 학생이 아니라 자신이 아는 것을 바탕으로 AI의 답을 사용할 줄 아는 학생을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탐구보고서를 작성할 때 AI에게 보고서 전체를 쓰도록 맡기는 것과 AI를 활용해 연구 질문 후보를 만들고, 자료 검색 방향을 넓히고, 자신이 작성한 논리의 약점을 점검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같은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앞으로 학교에는 'AI 사용 여부'만 표시하는 규칙보다 어떤 과정에서 어떤 목적으로 AI를 활용했는지 드러내게 하는 방식도 필요할 수 있다.
실업계 고등학교에서는 AI 활용이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이곳에서 AI는 별도의 교양교육에 머물 것이 아니라 실제 직무와 결합돼야 한다. 반도체 공정, 로봇 제어, 스마트 제조, 설계와 생산관리 등 자신이 배우는 분야에서 AI가 어떻게 쓰이는지 경험하고 기존 전공지식과 AI를 함께 활용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산업 현장에서 AI가 실제 업무 도구로 빠르게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실업계고 학생에게 AI 활용 경험을 늦추는 것도 교육적 위험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AI 사용 자체보다 전공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AI의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직무를 알아야 AI가 낸 결과의 오류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연합뉴스) 김호천 기자 = 1일 오후 제주여자상업고등학교 조리실에서 전국 최초로 도입한 AI 기반 조리로봇을 이용한 새우튀김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2025.12.1
kh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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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게 가르칠 교사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국내 정책 역시 학교 현장의 AI 교육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이미 움직였다. 교육부는 2026년 AI 중점학교 1천141개교를 운영하면서 수업과 학교생활 속에서 학생들이 AI를 올바르고 책임 있게 이해하고 활용하는 교육 모델을 확산하겠다고 밝혔다. AI 융합형 교육실 사업에서도 학생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경험을 강조했다. AI를 별개의 기술 과목으로만 가르치기보다 기존 교과와 연결하려는 흐름이 뚜렷해진 것이다.
◇ AI 시대에는 평가도 둘로 나눠야
이렇게 교육내용을 바꾸면 반드시 함께 바뀌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평가다.
AI 시대의 학교는 학생이 AI 없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과 AI를 활용해 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모두 길러야 한다. 학교의 평가 역시 두 능력을 모두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를 한 시험 안에서 모두 측정하려고 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AI 없이 치르는 시험에서는 학생 개인이 실제로 보유한 지식과 사고력을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AI 활용을 허용한 프로젝트에서는 AI에 무엇을 맡겼고 어떤 결과를 거부했으며 어떻게 검증하고 수정했는지를 볼 수 있다. 두 평가는 측정하려는 능력부터 다르다.
그러나 고등학교의 평가는 대학입시와 맞닿아 있다. 그렇다고 AI 활용과 협업 능력이 중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곧바로 대입의 새로운 변별요소로 삼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사용하는 AI의 성능과 비용, 가정환경과 사교육의 영향, 평가의 신뢰성과 공정성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과제를 받아도 유료 AI 서비스를 여러 개 이용할 수 있는 학생과 제한된 무료 서비스에 의존하는 학생의 환경은 다를 수 있다. 부모나 사교육 기관이 AI 활용법을 체계적으로 지도할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AI 협업 능력을 곧바로 대입 점수로 환산했을 때 새로운 교육격차가 생길 위험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생성형 AI가 교육에 공정하게 활용되려면 기기와 연결성, 디지털 자원뿐 아니라 교사 연수 등 AI 활용 기반을 학생들에게 고르게 제공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반대로 입시에 반영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학교의 자율에만 맡겨두는 것도 답은 아니다. 입시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 교육이 쉽게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필요한 능력이지만 입시에 넣을 수 없는 것이라면 학교가 반드시 가르치도록 다른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AI 활용과 검증, 협업 능력을 정규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으로 두고 일정 수준의 학습과 탐구활동을 필수적으로 이수하도록 할 수 있다. 학생들을 미세한 점수 차이로 줄 세우기보다 일정 수준의 역량을 갖췄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이를 정규 교육과정의 이수 요건과 연결해 학교가 반드시 가르치고 학생이 반드시 경험하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때 평가 대상도 결과물만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어떤 질문을 AI에 던졌는지, AI가 내놓은 답에서 무엇을 의심했는지, 어떤 자료로 사실을 검증했는지, 최종 결과에서 무엇을 학생 스스로 수정했는지 등을 과정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 AI를 사용했다는 사실 자체보다 학생이 AI를 얼마나 주도적으로 통제했는지를 보는 방식이다.
반면 수능과 같은 통제된 입시평가는 학생이 AI 없이 스스로 갖춘 교과 지식과 사고능력을 확인하는 역할을 계속할 수 있다. AI가 일상화됐다고 해서 이런 평가가 낡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에게 실제로 남아 있는 능력을 확인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 분명해질 수도 있다.
계산기가 존재한다고 기초 계산 능력이 필요 없어지지 않았고 검색엔진이 등장했다고 독해력과 배경지식의 가치가 사라지지 않았다. 생성형 AI 역시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외부 도구가 강해질수록 그 결과를 해석하고 검증하기 위해 머릿속에 무엇이 남아 있어야 하는가의 문제다.
◇ 중요한 것은 '빠른 도입'보다 '학습의 순서'
결국 초·중·고 AI 교육의 핵심은 AI를 얼마나 빨리, 많이 가르칠 것인가가 아니다. 학생의 성장단계에 따라 스스로 해야 할 학습과 AI와 함께해야 할 학습의 순서를 제대로 정하는 일이다.
초등학교에서는 읽고 쓰고 계산하고 생각하는 기초를 충분히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AI의 성격과 위험, 개인정보와 책임 같은 기본 소양을 익힐 수 있다. 중학교에서는 AI의 답을 비교하고 의심하며 출처와 오류를 검증하는 경험을 넓혀갈 수 있다. 고등학교에서는 충분한 교과 지식 위에서 AI와 실제로 협업해 더 복잡한 문제를 풀어보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이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나이에 같은 도구를 허용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교과와 과제의 목적, 학생이 이미 갖춘 능력에 따라 경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AI 도입의 속도보다 학습 과정에서 무엇을 인간이 먼저 해야 하는지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AI 시대의 교육은 AI 사용법부터 서둘러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 먼저 갖춰야 할 힘을 충분히 기르고 그 위에 AI와 협업하는 능력을 쌓아 올리는 교육이어야 한다.
OECD가 제시한 방향도 결국 이와 맞닿아 있다. 학생이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교과의 기초 역량을 익히는 경험, 교육 목적으로 설계된 AI와 함께 배우는 경험, 이후 범용 생성형 AI를 적절히 활용하는 경험 사이에 순서와 목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AI가 먼저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시대일수록 학교는 오히려 더 어려운 질문을 맡게 됐다. 아이의 머릿속에서 반드시 먼저 일어나야 할 생각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생각이 자란 뒤 어떤 일을 AI와 나누게 할 것인가.
초·중·고 AI 교육의 설계는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임기범 인공지능 전문가
▲ 한국특수정보인증원 최고 AI 책임자(CAIO) ▲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대학교(aSSIST) 객원교수 ▲ AI경영학회 상임이사 겸 학술분과 위원장 ▲ 전 ㈜컴팩 CIO ▲ 전 신한 DS 디지털 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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