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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앙아를 잇다]⑭ 160년 유랑 넘어 공존으로…함께할 '다음 이웃'(끝)

입력 2026-09-04 09: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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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서 중앙아·유럽·한국까지…K-디아스포라 궤적 따라 10개국 취재


지원 넘어 교육·산업·정주 잇는 '연결 정책' 필요…"동포·이주민은 공존·협력 주체"




강제이주 출발지였던 라즈돌노예역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 중간에 자리한 라즈돌노예역은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 첫 번째 열차가 출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2026.9.1 wakaru@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강성철 정아란 성도현 기자 = 오는 16∼17일 열리는 '제1차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를 계기로 러시아 연해주 라즈돌노예역의 철로에서 시작한 취재는 중앙아 5개국을 거쳐 사할린과 일본, 유럽까지 이어졌다.


1937년 고려인들이 화물열차에 실려 떠난 러시아 연해주에서는 강제이주의 흔적을 좇았다. 사할린과 일본에서는 아픈 과거를 간직한 채 현지 사회에 뿌리내리고 한국과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는 후손들을 만났다.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서는 황무지를 일궈 현지 사회의 주역이 된 고려인 후손들을 만났고, 키르기스스탄에서는 한국 취업과 유학을 꿈꾸는 청년들의 '코리안 드림'과 그 이면의 현실을 살폈다. 타지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가 사업 이후 현지에 무엇을 남기는지 들여다봤다.


한국의 울산 조선소와 김해 공장에서는 중앙아 청년들이 땀 흘리며 일하고 있었고, 청주와 안산의 교실에서는 중앙아 출신 아이들이 한국 아이들과 함께 자라고 있었다.


네덜란드와 독일 등 서유럽에서는 중앙아와 러시아를 다시 떠나 의사와 IT 전문가, 예술가 등으로 현지 사회에 뿌리내린 고려인과 사할린동포 후손들을 추적했다.




일 홋카이도 최북단 왓카나이에 세워진 사할린 위령비

(왓카나이=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일본 정부가 일제시대 사할린에서 죽은 일본인과 한인 등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세운 위령비 '빙설의 문'이 홋카이도 최북단 왓카나이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공원에 세워져 있다. 2026.9.1.wakaru@yna.co.kr


러시아 연해주를 기점으로 160여년의 이동사를 따라가며 취재진이 확인한 것은 과거의 비극이나 오늘의 성공담만은 아니었다. 고려인과 사할린동포, 중앙아 청년과 국내 이주민에 대한 기존 정책이 보완되고 확장될 필요성을 보여줬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동포와 전문가들은 이들을 지원 대상이나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는 인력으로만 바라보기보다 한국과 현지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이자 협력의 주체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 160여년 이동 끝나지 않아…'지원 대상'서 '연결 동반자'로


고려인의 이동은 1864년을 전후해 한반도에서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간 이주에서 시작됐다. 1937년 17만명이 넘는 고려인이 중앙아로 강제이주당했고, 소련 해체 뒤에는 일부가 러시아와 한국 등으로 다시 이동했다.


중앙아와 러시아에서 태어나거나 성장한 후손 중 일부는 교육과 직업, 결혼과 자녀의 미래를 찾아 독일과 네덜란드 등 유럽으로 삶의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이처럼 동포가 세계 각지로 다시 흩어지는 상황에서는 거주국별 한인 단체 지원에 머무르는 기존 접근 방식으로는 이들을 연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카자흐스탄 동포사회 이끄는 고려인협회 임원들

(알마티=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카자흐스탄 동포사회를 이끄는 고려인협회 임원들. 왼쪽부터 강 게오르기 전 카자흐스탄 국립사범대 역사학부 교수, 리 류보비 카자흐스탄 국립 아카데미 고려극장 예술감독, 김로만 전 카자흐스탄 하원의원, 채 알렉산드라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 부회장, 김 콘스탄틴 고려일보 대표. 2026.9.4 phyeonsoo@yna.co.kr


연해주에서는 고려인 기업인·전문직이 한러 민간교류의 통로가 되고 있었고, 사할린과 중앙아에서도 현지 사회에 뿌리내린 후손들이 언어·문화와 각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국과의 접점을 넓히고 있었다.


반면 서유럽에서는 대규모 집거지나 조직화한 동포사회 없이 개인으로 흩어져 있어 고려인이라는 존재 자체가 공식 통계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다.


취재진이 만난 동포들은 정부와 재외공관, 동포단체 중심의 기존 네트워크에서 한발 더 나아가 현지 전문직·기업인·청년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한국의 기업·대학·청년과 교류할 통로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사할린 한인 이주사를 연구한 파이차제 스베틀라나 홋카이도대 교수는 현지화하는 후손들에게 "한국인이 왜 한국어를 못하느냐"고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어 사용 여부만으로 정체성을 판단하기보다 여러 국가의 언어와 문화를 체득한 경험 자체를 강점으로 바라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투르크메니스탄 발칸조선소의 한국인 직원들

(투르크멘바시=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지난 6월 30일 투르크메니스탄 카스피해 연안에 위치한 발칸조선소에서 한국 고려조선산업기술(KSIT) 직원들이 건조 중인 6천100톤(t)급 다목적 화물선 2호선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6.9.4 raphael@yna.co.kr


◇ 사람까지 남아야 협력 완성…'짓고 떠나는 사업' 넘어 운영


같은 원칙은 경제협력과 ODA에도 적용된다.


투르크메니스탄 키얀리 폴리머 플랜트에서는 한국 기업이 건설한 대형 시설이 가동을 멈춘 모습을 확인했다. 반면 발칸조선소에서는 한국 전문가들이 현지 인력을 교육하며 선박 건조와 기자재 현지화를 추진하고 있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원자력발전소 한 기나 태양광 패널 가격만으로 러시아·중국과 경쟁하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국이 상대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분야는 에너지저장장치(ESS)·스마트그리드, 운영·유지관리, 디지털 기술처럼 시설 건설 이후 필요한 영역이 거론됐다.


ODA 현장도 마찬가지였다.


타지키스탄의 60년 넘은 양수장을 현대화해도 현지 기관이 관리하지 못하면 물길은 다시 막힐 수 있다. 투르크메니스탄 마리주 가스직업훈련원에서는 ODA 사업이 종료된 뒤에도 한국이 지원한 4개 공과가 운영되고 있었다. 사업 단계부터 현지 기관이 인력과 예산을 맡는 구조를 만든 결과다.


현지 관계자들은 지원 규모보다 사업 종료 이후 운영과 인력양성까지 살피고, 정부 간 업무협약을 민간 투자와 장기 사업으로 연결하는 모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타지키스탄서 노후 농업용 양수장 현대화 나선 코이카

(루다키=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지난 6월 27일 타지키스탄 두샨베 인근 루다키 지역의 노후 농업용 양수장에서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타지키스탄 사무소의 강승헌 소장(왼쪽에서 다섯 번째)과 조민채 부소장(왼쪽에서 세 번째)을 비롯해 현지 관개청 관계자 등이 현장을 둘러본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6.9.4 raphael@yna.co.kr


◇ 노동자에서 이웃으로…국내서도 이미 시작된 중앙아와의 협력


한국과 중앙아의 협력은 국내에서도 현재 진행형이다.


울산 조선소와 김해 제조업 현장에서 만난 중앙아 노동자들은 단순 보조인력을 넘어 숙련공과 반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정책도 인력 도입을 넘어 현지 교육·선발부터 입국 뒤 적응과 권익 보호, 숙련인력 관리와 귀환까지 한 축으로 연결해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족을 한국으로 불러 장기 정착하려는 노동자가 늘어나는 만큼 사업장 밖의 삶도 중요해졌다. 김해와 안산 등에서는 중앙아 출신 주민의 생활권이 형성되고 있지만 기존 주민과의 접점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아이들은 더 빠르게 한국 사회의 일부가 되고 있다.


올해 이주배경학생은 처음 21만명을 넘어섰다. 청주 봉명초와 김해 합성초에서는 이주배경학생이 폐교 위기의 학교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한국어와 러시아어 등을 섞어 쓰는 아이들은 친구와 부모의 통역사 역할도 하고 있었다.


교육계에서는 한국어 습득에 그치지 않고 모국어를 살려 이중언어와 다문화 경험을 경쟁력으로 키우는 교육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주노동자를 노동력으로만 보고 자녀를 적응 대상으로만 바라보면 한국 사회에 들어온 인재의 잠재력을 살리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작업 전 안전점검회의하는 조선소 노동자들

(울산=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지난 6월 22일 울산의 한 조선소에서 근로자들이 작업 전 안전점검회의(TBM)을 하고 있다. 2026.9.3 airan@yna.co.kr


◇ 역사 기억하되 미래 함께…"장기 정책 필요"


미래 협력의 확대와 별개로 과거의 역사를 보존하고 고령 동포를 돌보는 문제도 남아 있다.


사할린에서는 고령의 강제동원 피해자가 세상을 떠나는 가운데 영주귀국으로 다시 가족이 갈리는 '역이산'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거주지인 김병화 마을에서는 주민이 줄고 고령화하면서 박물관과 독립운동가 후손 묘역을 관리할 사람이 부족하다. 고려인 전용 요양시설도 타슈켄트 아리랑요양원이 유일하다.


역사 보존과 고령층 돌봄, 귀환동포의 비자·주거·취업 지원은 경제적 활용 가능성과 별개로 지속해 살펴야 할 영역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회성 기념행사보다 현장에서 오래 지속되는 지원이 필요하다는 동포사회의 목소리도 반복됐다.




러시아어 수업 듣는 학생들

(청주=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지난 7월 6일 청주시 봉명동 봉명초 온누리관에서 학생들이 원어민 보조교사인 안나 씨가 진행하는 러시아어 수업을 듣고 있다. 2026.9.3 airan@yna.co.kr


◇ '다음 이웃' 이미 우리 곁에…관건은 '연결과 지속성'


취재팀이 6개월간 10개국에서 확인한 사람들의 이동은 한 방향이 아니었다. 강제이주 후 중앙아에 정착한 고려인의 후손들은 러시아와 한국, 다시 서유럽으로 삶의 영역을 넓혔고 반대로 중앙아의 젊은이들은 유학과 취업을 위해 한국으로 향하고 있다.


과거의 디아스포라와 오늘의 노동·교육·산업협력이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이동을 통해 맞닿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고려인을 돌봐야 할 동포, 중앙아 청년을 한류 소비자, 국내 이주민을 부족한 일손을 대신할 노동력으로 각각 나눠 바라보기보다 함께 배우고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정책 간 연결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동포 정책은 차세대 네트워크로, 외국인 정책은 가족 정착과 자녀 교육, 경력 관리와 귀환까지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고려인과 중앙아 인력을 한국에 필요한 '자산'으로만 바라보는 시각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려인과 사할린동포는 각 거주국 사회의 구성원이고 중앙아 청년과 국내 이주민 역시 각자의 삶과 선택을 가진 만큼, 양측 모두에 실질적인 이익이 되는 관계가 장기 협력의 전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제1차 한-중앙아 정상회의를 계기로 양측 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 것으로 기대되는 상황에서, 정부 간 합의와 개별 사업을 사람 간 지속적인 관계로 얼마나 이어가느냐가 향후 협력의 깊이를 가를 것으로 전망된다.


※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유럽 곳곳에서 모인 고려인·사할린동포

(암스테르담=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제81주년 광복절인 지난 8월 15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식당 '더 밥'에서 연합뉴스의 장기 취재 과정에서 마련된 간담회에 참석한 고려인과 사할린동포 후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 독일 등에서 온 참석자들은 가족의 이주사와 한국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2026.9.4 raphael@yna.co.kr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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