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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쿠르틴스 의장 "정치적 갈등에도 과학은 소통 채널"
중국 등과 공동연구 지속…한국과 양자통신·우주 협력 기대

[촬영 조승한]
(융프라우요흐<스위스>=연합뉴스) 조승한 기자 = "세계가 정치적으로 갈등해도 과학은 소통의 채널을 열 수 있습니다."
실비오 데쿠르틴스 국제고고도연구시설재단(HFSJG) 의장(스위스 베른대 명예교수)은 지난달 19일 스위스 융프라우요흐 연구소에서 가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재단의 존재 이유를 묻자 주저 없이 '과학 외교'를 꼽았다.
그는 "스위스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고산 연구시설을 국제사회와 공유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재단은 세계 연구자들이 함께 연구하고 협력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 세계 연구자에 문 연 융프라우…100년 국제 연구거점
재단은 스위스 알프스의 융프라우와 묀히 능선 사이에 자리한 융프라우요흐 연구소와 해발 3천571m의 스핑크스 관측소, 마터호른 인근 해발 3천89m의 고르너그라트 연구시설 등을 운영하고 있다.
연구를 직접 수행하지는 않지만, 각국 연구자들에게 연구시설과 장비, 숙박시설 등을 제공하는 국제 연구 플랫폼 역할을 한다.
스위스 연방정부 지원을 기반으로 운영되며, 스위스를 비롯해 벨기에, 독일, 영국, 오스트리아, 핀란드, 중국 등 세계 각국 연구기관과 대학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한국도 광주과학기술원(GIST) 고등광기술연구소를 통해 협력해 왔으며 2024년 재단 이사국으로 합류했다.

[촬영 조승한]
데쿠르틴스 의장은 "우리는 특정 국가나 특정 연구 분야를 위한 시설이 아니다"며 "고고도 환경이 필요한 연구라면 어느 나라 연구자든 이용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재단의 철학은 연구소 설립 당시부터 100년 가까이 이어져 왔다.
그는 "생리학자인 발터 헤스가 재단 설립부터 국제 연구시설을 추진했고, 1930년 재단을 세운 뒤 1931년 연구소를 개소했다"고 말했다.
194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기도 한 발터 헤스는 당시부터 연구소를 스위스만의 시설이 아니라 세계 연구자들이 함께 이용하는 국제 연구거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비전을 제시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 노벨상 연구 5명과 인연…"고고도 연구라면 분야 안 가려"
또 유네스코(UNESCO)에 과학 기능을 추가하는 데 기여하고 자연과학부 초대 책임자를 맡았던 영국 과학사학자 조지프 니덤도 1947년 이곳을 방문해 '정치를 넘은 순수한 국제 연대'라는 자신의 유네스코 과학 구상을 구체화하는 계기로 삼는 등 과학기술의 초기 국제협력 모델 역할을 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 결과 융프라우요흐 연구소는 유럽의 연구자들이 모여 고산의학과 기후·대기과학, 빙하학, 천문학, 우주선 연구 등 다양한 분야 세계적 연구 성과를 내며 국제 연구거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베른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데쿠르틴스 의장은 "이곳에서 수행된 연구는 지금까지 물리학과 화학, 생리의학 등 5명의 노벨상 수상 연구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며 "현재도 평균 2주에 한 편꼴로 이곳에서의 연구를 기반으로 한 국제 학술논문이 발표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소가 세계적 연구 거점으로 자리 잡은 배경으로 지리적 이점과 연구 인프라를 꼽았다.
데쿠르틴스 의장은 "북쪽으로는 스칸디나비아, 남쪽으로는 이탈리아까지 대기 흐름을 관측할 수 있는 알프스 중심부에 위치해 대기와 기후 연구에 매우 중요한 곳"이라며 "철도를 통해 연중 같은 고도에 접근할 수 있고 최고 수준의 연구시설과 장비를 갖춘 덕분에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성과가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 과제도 학문 분야를 가려 선정하지 않는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과학적 중요도를 평가해 연구를 선별하지 않는다"며 "기술적으로 수행이 가능하고 고고도 환경이 필요한 연구라면 모든 제안을 검토하고 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말했다.

[HFSJG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세계 분열돼도 과학은 소통"…한국과 양자통신 협력
그는 국제 정세가 악화하는 상황에서도 과학 협력은 이어지고 있다며 이곳에서도 중국 등과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는 분열되고 있지만 과학은 국가 간 신뢰를 쌓고 대화를 이어가는 수단이 될 수 있다"며 "국제우주정거장(ISS)이 미국과 러시아 간 정치적 긴장 속에서도 협력을 이어가는 것처럼 이곳도 일종의 ISS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전 세계 젊은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아이디어를 교환하게 하는 것"이라며 "세계에는 어려운 정치적 상황이 존재하지만, 과학이 아니라면 누가 소통 채널을 열 수 있겠나"고 강조했다.

[더그 헤그스트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최근에는 한국과의 공동 연구도 확대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양자통신, 우주 등 연구 분야를 확장할 것으로 기대했다.
GIST 고등광기술연구소는 한-스위스 양자과학기술 공동연구 프로그램을 통해 스위스 베른대와 지상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양자 정보를 안정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지 검증하는 과제를 수행 중이다.
스위스 고고도 연구인프라를 활용해 짐머발트와 융프라우요흐 구간(거리 약 57km, 고도차 약 2.5km)에 고정 링크를 구축하고 장기 계측을 수행하는 게 목표다.
데쿠르틴스 의장은 "한국과 협력도 어느 분야든 구애받지 않는다"며 더 많은 연구자와 협업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HFSJG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shj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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