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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로] 에이전트 A를 아시나요

입력 2026-08-13 0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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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말기 日 식민지 한반도 내란 공작 목표로 스파이 훈련


007 본드보다 더 영화 같은 삶…광복과 나라 발전에 일생 바쳐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4년 미국은 적국 일본의 식민지인 한반도에 재미 한인 요원들을 침투시켜 무장 독립운동과 내란을 촉발하는 계획에 착수했다. 일본과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요충지인 한반도에서 해방전선이 구축돼야 한다고 본 것이다. '냅코 작전'(NAPKO Project)으로 명명된 이 특수작전은 중앙정보국(CIA) 전신인 전략첩보국(OSS)이 기획하고 실행했다.


이에 따라 4개 특수 침투조에 한인 18명이 선발돼 캘리포니아 한 섬에서 고도의 특수훈련을 받았다. 잠수정과 비행기 등으로 주요 도시에 침투해 무장 유격활동, 시설 폭파, 포섭 및 정보수집, 여론 교란, 아군 상륙지원 등을 전개하려는 엘리트 스파이 교육이었다. 고된 훈련 끝에 1945년 8월 18일이 침투 디데이로 정해졌으나, 결국 작전은 실행되지 못했다. 대공습과 원폭에 전의를 상실한 일본이 작전 개시 사흘 전인 8월 15일에 백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일본 항복 서명 받는 맥아더 제독

1945년 9월2일 일본의 항복 서명을 받는 맥아더 제독. 그 뒤에 두 명의 장군이 서 있다. / 1995.1.1(본사자료) <저작권자 ⓒ 2001 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이들 한인 비밀 첩보요원 18명 중에서도 경성 침투조를 이끈 리더의 일생은 스파이 영화 주인공 007 제임스 본드보다 더 영화 같다. 믿기 어려울 만큼 극적이고 이타적이며 희생적이어서다. 어떤 독립운동가 못지않게 평생 자신의 모든 걸 나라에 바쳤다. 당시 실명을 사용할 수 없던 그의 암호명은 '에이전트 A'였다. 그는 중견기업을 소유한 성공한 사업가였고 부인과 자녀도 있었다. 잃을 게 많았지만, 광복을 위한 일념으로 목숨 건 임무에 자원했다. 심지어 50대에 접어든 나이에도 청년도 하기 힘든 고통스러운 특수훈련을 모두 소화했다.


당시 OSS는 한반도 지리와 언어에 능통하면서 충성심이 검증된 스파이를 필요로 했다. 여기에다 사회적 네트워크와 영향력, 인맥까지 보유한 에이전트 A는 냅코 작전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핵심 요원으로 여겨졌다. 당시로선 고령인 50대 초반에 막대한 재산과 사회적 지위, 가정까지 있었던 그가 다 내려놓고 일본 패망을 위한 특수작전에 투신한 건 거짓말처럼 들릴 만큼 대단하다. 자신의 목숨과 재산, 가족조차도 독립과 국권 회복이란 대의를 이루는 데 바치려 했으니 지사(志士)란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냅코의 일화는 에이전트 A의 비범한 삶을 드러내는 일부일 뿐이다. 그의 일생은 유년기부터 황혼기까지 독립운동과 애국을 향한 일관된 여정이었다.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불과 9세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거상(巨商)이던 부친이 암울한 나라 미래를 걱정해 아들이 선진 학문을 익힌 지도자로서 국가에 기여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에이전트 A는 한창 어리광을 부릴 나이에 네브래스카주에 설립된 '한인소년병학교'에서 낮에는 농장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하고 방학 때엔 군사훈련을 받는 독립군 양성 과정을 이수했다.




소년병 시절 에이전트 A(앞줄 오른쪽 첫번째)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DB 금지]


명문 미시간대를 다니던 시절엔 일제 식민지 고국에서 3·1 운동이 일어나자 필라델피아에서 서재필 주도로 열린 '한인자유대회'에 참가했다. 그는 한인 결의문을 작성해 발표하는 등 미주 한인 독립운동의 청년 지도자로 떠올랐다. 대학 졸업 후엔 숙주 통조림 회사를 차려 성공했는데도 미국에서의 안락한 삶을 버리고 1926년 귀국해 의약품 수입·판매·제조 회사를 설립했다. 목적은 부의 축적이 아니라, 질병으로 고통받는 동포를 구하고 독립 투쟁을 위한 경제 기반을 다지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회사는 상하이 임시정부와 해외 독립운동 단체의 비밀 자금줄 역할을 했다. 에이전트 A는 기업인 신분을 활용해 해외를 오가며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하고 비밀 연락책 역할도 수행했다. 그는 또 이 회사에서 얻는 이윤을 독립운동가 자녀들의 장학금과 민족 교육·언론 기관을 지원하는 데 썼다. 1941년 진주만 공습 이듬해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인 군사조직(맹호군)을 창설하고 훈련하는 일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에이전트 A는 꿈에 그리던 광복 이후엔 국가 재건에 온몸을 던졌다. 기업 경영을 통해 얻은 재산은 가족에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환원한 뒤 1971년 세상을 떠났다. 이 모든 일을 한 사람이 했다니 믿기지 않는다. 그는 광복에 기여한 독립운동가이자 고도성장을 이끈 기업가이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평생 실천한 우리 사회의 스승이자 본보기였다. 우리가 지금처럼 평안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건 온전히 에이전트 A 같은 선열들 덕이다. 제81주년 광복절에 즈음해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돌아보며 고개를 숙이게 된다. 에이전트 A의 이름은 기업인이자 교육가로 더 잘 알려진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자다.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자

[연합뉴스 자료사진. 유한양행 제공. 재배포 DB 금지]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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