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불편하시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김영완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영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지난 6월 서울에서 외교부가 주최하고 연합뉴스와 한·아프리카재단,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KOTRA), 한국무역협회가 공동 주관한 '한-아프리카 비즈니스 포럼'이 열렸다. 아프리카 각국의 장관과 기업인, 아프리카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한국 기업인들로 행사는 성황리에 진행됐다. 아프리카는 더 이상 원조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성장할 동반자라는 말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필자는 이 포럼에서 한 세션의 사회를 맡아 특별한 손님과 대담을 나누었다. 가나 출신의 엔지니어이자 기업가인 빅터 로렌스 빌라세스티 대표이사 겸 의장이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로렌스 의장은 힘차게 무대에 올랐고, 온화한 미소와 대화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지난 6월 2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6 한-아프리카 비즈니스포럼에서 김영완 서강대 교수(왼쪽)와 빅터 로렌스 빌라세스티 대표이사 겸 의장이 '세션2: 한-아프리카 비즈니스 협력, 현재와 미래'를 진행하고 있다. 2026.6.2 dwise@yna.co.kr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1945년 가나 아크라에서 태어난 로렌스 의장은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벨연구소에서 30년 넘게 일하며 부사장 자리까지 올랐다. 그는 우리가 매일 쓰는 인터넷의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전화선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모뎀의 국제 표준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가 개발한 신호처리 기술은 지금도 전 세계 반도체 칩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공로로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그는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과학기술 분야 최고 영예인 국가기술혁신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1990년대에는 아프리카 대륙을 해저 광케이블로 연결하려는 '아프리카 원'(Africa One) 구상을 주도하며 오늘날 아프리카 정보통신 인프라의 밑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엔지니어로서 이룰 수 있는 성공 대부분을 이룬 인물이었다.
이제 그가 인생의 마지막 과업으로 선택한 것은 고국 가나에 산업단지를 짓는 일이다. 그가 이끄는 빌라세스티는 수도 아크라 인근 약 117만평(3.86㎢·여의도 면적 1.3배)의 부지에 스마트 산업단지와 과학기술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단지 안에는 한국 기업, 특히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아프리카 진출을 돕는 K-테크타운도 들어설 예정이다.
첨단 제조업과 인공지능 기술, 창업 보육, 교육과 연구가 어우러진 생태계를 만들어 앞으로 10년 안에 10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그는 대담에서 빌라세스티가 아프리카로 향하는 한국 기업들을 위한 플랫폼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원조나 원자재 수출이 아니라 산업화가 아프리카를 일으켜 세운다는 그의 말에는 오랜 경험에서 나온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나를 방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필자가 아크라를 찾은 것은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관계자들을 인터뷰하기 위해서였다. 가나 수도 아크라는 활기가 넘치는 도시였다. 독립광장의 검은 별 조형물 아래로 출근길 차량이 꼬리를 물었다. 시장에는 물건을 이고 나르는 상인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AfDB는 아프리카에 전기를 공급하고, 식량을 증산하며, 산업화를 이루겠다는 목표 아래 대륙 곳곳에서 도로와 발전소, 농업과 교육에 자금을 투입하고 있었다. 관계자들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아프리카의 인프라 수요를 채우려면 매년 1천억 달러(128조2천400억원)에 가까운 자금이 더 필요한데, 개발은행과 원조 기관의 공적 재원만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이었다. 아프리카의 성장을 위해서는 민간 자본이 들어와 산업의 기반을 함께 다져야 한다는 사실을 그때 실감했다.

[김영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가나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나라다. 가나는 1957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장 먼저 식민 지배에서 벗어났다. 1992년 민주 헌정을 회복한 이후 선거를 통한 평화로운 정권 교체를 거듭해 왔다. 쿠데타가 잇따르며 혼란에 빠진 이웃 서아프리카 국가들과 비교하면 놀라운 정치적 안정이다. 가나는 이 정치적 안정을 밑천 삼아 경제 성장을 이루려 한다. 그러나 코코아와 금, 석유 같은 원자재 수출에 기대는 경제 구조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원자재를 내다 팔고 공산품을 사 오는 구조가 계속되는 한, 국제 가격 변동에 흔들리는 취약한 경제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업단지가 중요하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성장도 그렇게 시작됐다. 농업을 중시하던 사회에서 경공업을 발전시켜 나갔고, 중공업의 기틀을 다졌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반도체 생산은 하루아침에 이룬 성과가 아니다. 산업단지는 단순히 공장을 모아 놓은 땅이 아니다. 전기와 도로, 물류와 행정이 한데 갖춰진 공간에서 기업이 성장하고, 기술이 이전될 수 있으며 숙련된 노동력이 확보될 수 있다. 아프리카의 젊은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일방적인 원조가 아니라 일자리이며, 일자리는 이러한 산업의 기반 위에서만 만들어진다.
특히 인공지능(AI) 시대는 아프리카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중위 연령이 스무 살이 되지 않는 젊은 대륙, 15억 인구가 쏟아내는 데이터는 그 자체로 거대한 자원이다. 아프리카 땅에도 데이터센터가 세워지고 그 위에서 아프리카의 언어와 현실을 담은 인공지능 서비스가 자라난다면, 유선전화 단계를 건너뛰고 곧바로 휴대전화 시대로 진입했던 것처럼, 산업화의 몇 단계를 뛰어넘는 도약도 가능할 것이다. 케냐에서 은행 지점 하나 없이 휴대전화만으로 금융 혁신을 이뤄낸 모바일 화폐의 사례는 아프리카가 새로운 기술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로렌스 의장이 산업단지에 인공지능과 데이터 인프라를 함께 담으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션을 마치고 로렌스 의장과 여러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평생을 미국에서 성공한 엔지니어로 살아온 그는 여든의 나이에 고국의 땅에서 새로운 희망을 심고 있었다. 한 사람의 성공이 고국으로 돌아와 수십만 명의 기회가 되는 순환이야말로 아프리카가 가장 필요로 하는 발전의 모습일 것이다. 이런 노력이 하나둘 모여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곳곳에 새로운 산업이 시작되고 새로운 산업에 종사하는 아프리카의 젊은이들이 보다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가나의 산업단지는 한 기업가의 꿈인 동시에, 아프리카와 한국이 함께 만들어가는 미래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영완 교수
현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 아이오와대학(University of Iowa) 정치학 박사,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개발협력 석사,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 사회과학단 전문위원(2022∼2024), 현 외교부 무상원조관계기관 협의회 민간전문가.
Copyright 연합뉴스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상품 확인하고 계속 읽어보세요!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