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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품의 아프리카인](45) 한국어와 20년 함께한 이집트 소녀 민나의 변신

입력 2026-07-29 07: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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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번역 현장 거쳐 외대서 박사과정…"한국어로 감정 표현이 더 편할 때도"


"AI 시대도 통번역사 사라지지 않아"…세계 곳곳 또다른 '민나'에 응원 메시지





16세 때 처음 접한 한국어와 함께 20년을 걸어온 민나 모하메드 [이하 본인 제공 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세진 기자 = "민나야, 오늘 네가 선택한 이 낯선 언어가 언젠가는 너의 인생이 될 거야."


스무 해 전 한국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열여섯 살의 자신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지 묻자, 민나 모하메드가 한 말이다.


민나가 이집트 명문 아인샴스대학교에 신설된 한국어학과 1기생으로 입학한 2005년, 한국어는 이집트에서 여전히 낯선 언어였다.


한국 드라마와 K팝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기 전이었고, 한국어를 전공한다는 것은 미래를 쉽게 그려보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주변에서는 "왜 하필 한국어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하지만 그 작은 선택은 한 소녀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민나는 한국어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났고, 통역과 번역, 한국어 교육의 길을 걸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아랍어권 학습자를 위한 통·번역 교육을 연구하고 있다.





아인샴스대학교 한국어학과 선후배들이 2022년 동문 모임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기자가 민나를 처음 만난 것은 이집트 주재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2006년 12월, 카이로에서 열린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였다.


당시 아인샴스대학교 한국어학과 2학년이던 민나는 무대에 올라 "김, 김, 김! 박, 박, 박!"을 외쳤다.


한국에서 김 씨와 박 씨가 얼마나 많은지를 익살스럽게 표현하자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고, 대회장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때만 해도 그 한국어가 민나의 삶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 갈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민나가 한국외대 일반대학원 학술 세미나에서 발표하고 있다.


스무 해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올해 초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민나의 계정을 발견했다.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몇 차례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20년 만에 취재 현장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21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대 인근의 한 식당에서다.


2006년 카이로에서 처음 본 열일곱 살 대학생은 어느덧 한국과 아랍 세계를 잇는 통·번역 교육 분야의 박사과정 연구자가 돼 있었다.


"한국어는 제 인생을 바꾼 언어입니다."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는 민나의 얼굴에서는 20년 전 낯선 언어를 향한 호기심으로 반짝이던 소녀의 눈빛이 여전히 느껴졌다.


그 눈빛에는 오랜 통·번역 현장과 연구의 시간을 거치며 다져진 내공이 더해진 듯했다.


민나는 오랜 세월 한국어와 함께해 온 사람답게 자연스러운 우리말을 구사했다.


그는 "한국어만 들리면 마음이 편해진다"며 "감정을 표현할 때는 모국어인 아랍어보다 한국어가 더 편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서운하다', '시원섭섭하다' 같은 표현을 예로 들며 한국어가 이미 자신의 감정을 담는 언어가 됐다고 설명했다.





코이카의 한-이집트 기술대학 설립 사업과 관련한 베니수에프주 주지사 면담에서 통역하는 민나(사진 중앙 왼쪽)


다음은 이날 나눈 대화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 먼저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 이집트에서 온 민나입니다. 20년 전 아인샴스대 한국어과 1기로 입학하면서 한국어와 처음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후 한국에서 유학하며 서울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쳤고, 이집트 최초의 세종학당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쳤습니다. 통·번역사로 정부 기관과 기업, 교육·문화 현장에서 활동했고, 2년 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외국어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했습니다. 지금은 아랍어권 한국어 학습자를 위한 통·번역 교육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 한국어를 배우기로 결심했던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 당시 이집트에서 한국은 지금처럼 널리 알려진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아무도 잘 모르는 새로운 언어를 배워 보고 싶다'는 호기심과 도전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한글을 처음 보았을 때 참 신기했는데, 배우면 배울수록 한글의 체계성과 한국어의 섬세한 표현에 빠져들었어요. 언어를 통해 한국 사람들의 정서와 삶의 방식까지 이해하게 되면서 한국이란 나라 자체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선택은 단순한 전공 선택이 아니라 제 인생의 문을 연 결정이었습니다.


-- 아인샴스대에서 2006년 열린 제1회 한국어 말하기 대회를 기억하나요.


▲ 아직도 생생합니다. 당시에는 사람들 앞에서 한국어로 말하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습니다. 많이 떨렸지만, 한국어로 한 문장씩 이야기할 때마다 사람들이 따뜻하게 들어 주는 모습을 보며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지만, 그 시절의 서툰 한국어에는 누구보다 순수한 열정과 용기가 담겨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민나(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대한민국 정부초청장학생(GKS) 동문회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이후 삶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 한국어는 제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한국어를 배우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을 만났고, 상상하지 못했던 길을 걸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어는 제게 또 하나의 언어만이 아니라 또 하나의 마음을 선물했습니다. 한국어로 생각하고, 웃고, 울고, 위로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한국어를 선택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어쩌면 한국어도 저를 선택해 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어를 빼고는 지난 20년의 저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 과거를 돌아볼 때 가장 큰 전환점은 무엇이었나요.


▲ 2년 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박사과정에 입학한 일입니다. 익숙한 삶을 뒤로하고 다시 학생이 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쌓아 온 경험을 연구로 정리해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었습니다.


-- 처음 한국을 알게 됐을 때와 비교해 지금의 한국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 20년 전 이집트에서 한국은 낯선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음악과 드라마를 넘어 한국어 교육과 기술, 기업까지 관심이 크게 늘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먼저 한국을 설명해야 했다면, 이제는 이집트 사람들이 먼저 한국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 치매 환자들을 돕는 봉사활동에 참여한다고요.


▲ 작은 도움이라도 드리고 싶어 시작했지만, 오히려 제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기억은 한 사람이 살아온 삶이고 정체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분들이 저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제가 그분을 기억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곁을 조용히 지켜 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배우고 있습니다.





민나가 지난 21일 인터뷰를 마치고 한국외대 서울캠퍼스 정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촬영 박세진]


-- 한국인들이 이집트에 대해 가장 오해하는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 많은 분이 피라미드와 사막만 떠올리지만, 이집트는 지금도 사람들이 공부하고 일하며 미래를 꿈꾸는 역동적인 사회입니다. 일부 정보만으로 위험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직접 만나 보면 이집트 사람들의 따뜻한 정과 환대에 놀라게 될 겁니다.


-- 한국인들이 꼭 알았으면 하는 이집트의 숨은 매력을 소개해 주세요.


▲ 이집트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람입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음식을 나누는 문화가 있습니다. 한국의 '정'과도 많이 닮았습니다. 피라미드뿐 아니라 나일강과 홍해, 오래된 골목과 시장 등 다양한 매력이 있는 나라입니다. 이집트를 살아 있는 사람들의 공간으로 경험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 지난 20년 동안 만난 한국인 가운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나요.


▲ 한 분 한 분 이름을 모두 부르고 싶습니다만, 혹시라도 소중한 분을 빠뜨릴까 봐 쉽게 이름을 꺼내지 못하겠네요. 대학 시절 한국어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들은 언어뿐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스스로를 믿는 용기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이룬 것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사람'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민나가 2022년 입사해 통역사로 일했던 한국수력원자력 인재개발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과 목표는 무엇인가요.


▲ 가장 가까운 목표는 박사과정을 잘 마치는 것입니다. 이후에는 아랍어권 한국어 학습자를 위한 통·번역 교재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습니다. 제가 처음 공부할 때는 자료도, 길을 보여 줄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공부할 학생들에게는 조금 더 넓은 길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궁극적으로는 한국과 이집트를 잇는 교육자이자 연구자, 통·번역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이 꿈입니다.


-- 아인샴스대 한국어과 1기 동기들은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있나요.


▲ 함께 입학했던 30명 가운데 지금도 많은 동기가 한국어와 관련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거나 통·번역, 기업, 정부 기관, 문화교류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전공과는 다른 길을 선택해 자기 분야에서 자리를 잡은 친구도 있지만, 다수가 한국과 이집트를 잇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AI 번역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입니다. 통·번역사와 통·번역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 저 역시 처음에는 AI가 통·번역사를 대체할 것 같아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박사과정에 진학한 뒤 지도교수님을 통해 AI를 조금씩 배우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AI 때문에 통·번역사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통·번역사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언어는 살아 있고 계속 변하기 때문에 AI는 결국 사람을 따라가는 존재입니다. 사람이 먼저 새로운 표현과 문화를 만들고, AI는 그것을 학습하는 것이죠. 예전에는 번역사가 직접 번역하는 일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AI 번역을 검수하고 품질을 평가하는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AI 번역과 기존 번역을 비교하고 어떤 표현이 더 적절한지 판단하려면 언어와 문화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결국 전문성이 더욱 요구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통·번역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에게 AI를 두려워하라고 가르칠 것이 아니라 AI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방법과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능력을 길러줘야 합니다. 계산기가 생겼다고 수학이 사라지지 않았듯이, AI도 통·번역사를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더 뛰어난 통·번역사가 되도록 도와주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 한국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대학생 민나에게 지금의 민나가 한마디 해준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 "민나야, 네가 지금 선택한 이 낯선 언어가 언젠가는 너의 인생이 될 거야. 지금은 문장 하나 말하는 것도 어렵고 한국도 멀게만 느껴지겠지만, 이 언어는 너를 아주 먼 곳까지 데려가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 줄 거야. 힘들면 잠시 쉬어도 괜찮아. 결국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자신의 길을 완성하게 될 거야."





민나가 즐겨 찾는 한국외대 도서관 열람실에 앉아 있다.


한국어는 민나에게 단순한 외국어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언어였다.


열여섯 살 소녀가 품었던 한국어에 대한 호기심은 어느덧 한국과 아랍권을 잇는 통·번역사이자 연구자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오늘 네가 선택한 이 낯선 언어가 언젠가는 너의 인생이 될 거야."


민나가 스무 해 전의 자신에게 건네고 싶다는 이 한마디는 단지 과거의 자신만을 향한 말은 아닐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누군가에게 민나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응원 메시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Twenty years after 'Kim, Kim, Kim; Park, Park, Park'


How Korean language changed Egyptian student's life


Mohammed now connects Korea and Arab world through language and education


Nearly 20 years ago, while serving as Yonhap News' Cairo correspondent, I met an Egyptian university student who stood nervously on stage at a Korean-language speech contest in Cairo.


Trying to make the audience laugh, she shouted, "Kim, Kim, Kim; Park, Park, Park," exaggerating the two most common Korean family names. The room burst into laughter.


At the time, Menna Mohammed was a 17-year-old sophomore, one of the first students enrolled in the Korean-language department at Ain Shams University.


I had no way of knowing then that Korean would become the language around which she would build her life.


Nor could I have imagined that almost two decades later, I would meet her again — this time in Seoul.


The reunion happened unexpectedly.


While browsing Instagram earlier this year, I came across Mohammed's account and realized she was living in Korea.


After exchanging a few messages, we met near the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on July 21, where she is pursuing a doctoral degree in interpretation and translation studies.


When asked what she would say to her 16-year-old self, Mohammed smiled before answering.


"The unfamiliar language you're choosing today will one day become your life," she said.


"Right now, speaking even one sentence in Korean feels difficult, and Korea seems unimaginably far away. But this language will take you farther than you ever expected and introduce you to people you'll never forget."


Mohammed was among the first students admitted to Ain Shams University's Korean-language department when it opened in 2005, becoming the first such department in North Africa and the Middle East.


Her class began with 30 students. More than half of them have gone on to work in Korean-related fields, including education, interpretation and translation, Korean companies and cultural institutions.


"None of us knew what the future would look like," she said.


"Looking back, I'm proud that so many of my classmates are still helping connect Egypt and Korea in their own ways."


At first, Mohammed chose Korean simply because it was unfamiliar.


Few Egyptians knew much about Korea, and almost no one around her was studying the language.


She wanted to challenge herself.


That decision gradually transformed into something much larger.


After earning a master's degree from Seoul National University, she returned to Egypt and worked as a Korean-Arabic interpreter, translator and educator.


Today she is back in Korea, pursuing a Ph.D. in interpreter and translator education for Arabic-speaking learners.


Yet she says the biggest change was not professional.


"Korean gave me another voice," she said.


"There are emotions I can express more naturally in Korean than in Arabic. Words like 'seopseophada' and 'soksanghada' simply come to me in Korean first."


Neither word has a precise English equivalent, reflecting shades of disappointment, sadness and emotional hurt.


"I've been comforted in Korean, and I've comforted others in Korean."


Mohammed admits that she was initially afraid AI (artificial intelligence) would one day replace professional interpreters and translators.


But her perspective gradually changed after entering her doctoral program, where discussions with her academic adviser helped her better understand the role of AI in translation studies.


"Calculators didn't replace mathematicians," she said. "AI won't replace translators, either."


Instead, she believes translators who know how to use AI will outperform those who ignore it.


"Language is alive and constantly evolving," she said. "People create new expressions and cultural meanings first, and AI learns from them afterward. AI can generate words, but understanding emotions, cultural context and human relationships still requires people."


Mohammed hopes to develop textbooks and training programs that will help Korean-language students throughout the Arab world study interpretation and translation more systematically.


"When I started, there were very few materials and almost no one who could show us the road ahead," she said.


"I want the next generation to begin with a clearer path than we had."


Looking back on the nervous teenager I met in Cairo nearly 20 years ago, one thing strikes me most.


The teenager who once made a Cairo audience laugh by shouting, "Kim, Kim, Kim; Park, Park, Park," in hesitant Korean is now helping shape how future generations will learn the language.


For Mohammed, Korean is no longer simply a foreign language. It is the language that has shaped her life.


(By Park Se-jin, Ubuntu Content Team of Yonhap News)


※ Editor's note: This English article is based on a Korean-language story. AI-assisted translation was used in part and the final version was reviewed by an editor.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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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9 08:00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