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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클러 없는 노후 아파트…불나면 최전선엔 '고령의 경비원'

입력 2026-07-26 0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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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한 방재 시스템 공백 메우는 역할…주민 대피시키다 숨진 사례도


고용불안은 계속…초단기 계약·용역업체 낀 하청 구조에 갇혀




압구정 한양아파트 화재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21일 오전 10시 27분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양아파트에서 불이 났다. 주민 20여명이 경로당 등으로 스스로 대피했고, 해당 동에 머무르던 3명은 출동한 소방대원들에게 구조됐다. 사진은 이날 소방관계자들이 화재 진압 후 화재가 발생한 세대와 주변 세대를 살펴보는 모습. 2026.7.21 jjaeck9@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우리도 무섭지. 연기가 펄펄 나는데."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양아파트 단지 내 주차장에서 만난 경비원 김모(71)씨는 공동주택 관리 중 가장 무서운 상황이 화재라고 말했다.


김씨가 고용된 아파트는 지난 21일 화마가 덮쳐 한 세대가 불에 탔다. 1978년 준공된 한양아파트는 스프링클러가 없다.


당시 한 65세 경비원이 5층으로 뛰어가 코와 입을 비집고 들어오는 연기를 참고 복도를 뛰어다녔다. 각 세대 현관문을 두드린 끝에 주민들은 대피할 수 있었다.


결국 화재는 인명피해 없이 끝났다. 소방대원들은 출동 20분 만에 큰 불길을 잡았고 낮 12시 4분께 불을 완전히 껐다.


김씨는 이런 노후 아파트에서 불이 날 경우 초기 대응을 재빨리 하지 않으면 자칫 사람이 죽거나 다칠 수 있어 경비원들의 진을 더 빼놓는다고 전했다.


오래된 아파트 특성상 자동 화재 대응 시스템이 미비해 초동 대처에 공백이 생기는데, 이를 경비원이 직접 움직이며 대신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비업법상 화재 대응은 경비원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이기도 하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화재 현장 지켜보는 주민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2월 24일 오전 6시 18분께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1명이 숨지고 같은 집에 있던 2명이 얼굴에 화상을 입고 연기를 마시는 등 부상을 입고 구조됐다. 아파트 주민 70여명은 스스로 대피했다. 이날 화재가 발생한 아파트에서 주민들이 화재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2026.2.24 photo@yna.co.kr


지난 2월 26일 여고생이 사망한 대치동 은마아파트 화재 때도 경비원이 추가 피해를 막으려 분주하게 움직인 상황이 강남소방서 조사보고서를 통해 드러났다.


경비원 A씨는 당일 오전 6시 18분께 경보음이 울리자 화재가 난 층으로 급하게 달려갔다. 세대 현관문 안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본 그는 각종 설비가 있는 1층으로 다시 내려와 관리사무소 전기실 직원에게 이를 알렸고 대피 방송을 했다.


잠을 자던 주민들은 경보음과 이 방송을 듣고 급하게 대피했다.


화재 대피를 안내하다 경비원이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사건도 있다. 2017년 3월 18일 오전 9시께 노원구의 한 아파트 주민을 돕다 숨진 양명승 씨다.


당시 지하 기계실 배관 절단 작업 중 불이 나자 양씨는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정전으로 승강기가 정지되자, 양씨는 15층 아파트의 계단을 오르내리다가 호흡 곤란 증세를 보이며 쓰러졌다. 평소 심장 질환을 앓았던 그는 결국 숨졌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연식이 오래될수록 소방 설비가 부족한 경우가 많아 경비원 역할에 기댈 가능성이 커진다고 분석했다.


경비원이 화재 대응 매뉴얼을 숙지해 적극 대처할수록 인명피해를 막는 '골든 타임'도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특히 야간에는 경비원이 (개별 단지의) 소방안전 관리자를 대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경비원들을 상대로 한 전문적 소방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2021년 서울 성북구 내 경비원 관련 현수막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이처럼 노후 아파트에 불이 나면 방재의 '최전선'에 뛰어드는 이가 경비원이지만, 이들이 마주한 현실은 고용 불안과 낮은 처우다.


대부분 아파트 관리주체는 용역업체를 끼고 경비원들과 초단기 계약을 맺는다.


통상 3∼6개월짜리 계약서를 쓰고 매번 연장하는 식이다. 업체 변경 등 사정에 따라 고용 상황도 시시각각 변한다. '집단 해고'에도 취약한 구조다.


최근에는 상계보람아파트 경비원 10여명이 일방적으로 해고당했다며 노원구 시민단체가 모여 연일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이 역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경비업체를 새로 계약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 고용 축소가 나타난 사례다.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 관계자는 "아파트 관리 주체는 비용 문제로 경비원을 줄이려 하는 흐름"이라며 "집단 해고가 아니라도 업체 변경을 비롯한 각종 이유로 한두 명씩 야금야금 자르는 일이 만연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경비원 고용 승계를 의무화하는 입법 작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고용업체들은 고령이라고 밀어내지만, 경비원들 상당수는 70∼80대 나이에도 여전히 생계를 위한 일자리가 필요한 현실이다.


서대문구 홍제동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으로 30년가량 근무한 김모(83)씨는 "6월 말로 잘렸다"며 한숨을 쉬었다.


김씨는 "고용업체 담당자는 올여름이 더워서 온열 환자가 많이 생기고, 심하면 죽는 사람도 있다며 이제는 쉬라고 했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주민대표 발언 듣는 경비노동자들

(서울=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22일 서울 노원구 상계보람아파트 앞에서 열린 경비노동자 대량 해고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주민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2026.6.22 ksm7976@yna.co.kr


pual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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