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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만으론 독자 AI 아냐…공급망·인프라까지 갖춰야
한국, AI 모델 경쟁력 확보…공급망 완성은 숙제

[김선영 제작] 일러스트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기자 =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미래 패권을 결정할 핵심 인프라로 떠오르면서 세계 각국이 '독자 AI'(Sovereign AI) 생태계 구축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글로벌 AI 경쟁의 초점은 오픈AI의 챗GPT처럼 '누가 더 똑똑한 거대언어모델(LLM)을 만드느냐'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중국에 대한 AI 수출 통제와 중국의 맹추격, 데이터 유출 우려 등 복합적 요인이 맞물리며 상황이 급반전했다.
AI가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경제 안보와 직결되는 국가 주권의 영역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 기밀이나 국민의 민감한 개인정보, 기업의 핵심 산업 데이터가 해외 빅테크의 클라우드 서버에 종속되는 상황을 막으려는 노력도 커지고 있다. 우수한 AI 모델을 보유하는 것을 넘어 누가 AI 인프라를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운영하느냐가 중요해진 데 따른 것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 일본, 중동 등 주요 국가·지역들도 '우리만의 AI'를 만들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정작 어디까지를 독자 AI로 볼 것인가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AI 모델만 자체 개발하면 기술 독립을 이룬 것인지,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등 물리적 인프라까지 100% 자급해야 하는지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IT 전문가들은 독자 AI 역량을 단일 LLM의 성능이 아닌 국가 차원의 'AI 공급망' 측면에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 AI 경쟁은 '모델'에서 '공급망'으로…독자 AI의 새로운 기준
'독자 AI'를 논하려면 우선 반도체 산업부터 들여다보는 게 한층 이해하기 쉽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반도체 칩 하나를 잘 설계한다고 해서 반도체 강국으로 불리진 않는다. 설계(팹리스)와 위탁생산(파운드리), 장비, 소재를 아우르는 공급망 전반을 장악해야 독보적인 경쟁력을 지닌 것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5일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삼겹살 음식점 '형님 저요'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삼소(삼겹살·소주) 회동'을 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6.5
mon@yna.co.kr
AI 산업도 과거엔 챗GPT에 필적하는 모델을 선보이는 것만으로도 AI 선도 국가의 반열에 올랐지만 현재는 평가 잣대가 많이 달라졌다.
AI 모델 학습의 핵심인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대규모 데이터센터, 안정적인 전력망, 클라우드 서비스, 양질의 학습 데이터베이스까지 유기적인 AI 생태계를 갖춰야만 진정한 'AI 주권'을 가진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국내 AI 스타트업 임원은 "불과 1년 전만 해도 얼마나 똑똑한 AI 모델을 뽑아내느냐가 중요했는데 최근 AI 모델 간 성능이 평준화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면서 "이제는 GPU를 적기에 확보하고 데이터센터의 가동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인프라 싸움으로 넘어갔다"고 전했다.
◇ 독자 AI는 어디까지인가…AI 주권 5단계로 본 국가 경쟁력
현재 글로벌 AI 산업 구조를 비춰볼 때 국가별 독자 AI 역량은 크게 5단계로 분류해볼 수 있다.
가장 기초적인 1단계는 해외 기술에 전면 의존하는 것이다. 오픈AI, 구글 등의 AI 모델을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로 빌려 쓰는 형태로, 데이터와 인프라 통제권을 모두 해외 사업자에 내준 상태다.
2단계는 메타의 '라마'(Llama)나 중국 알리바바 '큐원'(Qwen) 등 공개된 오픈소스 모델을 가져와 자국의 환경에 맞게 미세조정 하는 수준이다. 모델 구조와 배포에서 일부 자율성을 얻지만 학습·추론용 GPU와 클라우드는 여전히 해외 빅테크에 의존하는 구조다.
3단계부터 '자체 LLM' 역량이 필요해진다. 자국 언어와 산업 도메인에 특화된 초거대 언어모델을 독자 기술로 개발해 상용화하는 구간이다. 우리나라는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 LG AI연구원의 엑사원, 업스테이지의 솔라, KT[030200]의 믿음, 카카오[035720]의 카나나 등 적지 않은 AI 상용 모델을 보유해 이 단계에는 안착해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4단계는 'AI 플랫폼·인프라 생태계'가 구축된 상태다. 자체 AI 모델과 더불어 GPU 인프라, 국산 클라우드, 데이터 거버넌스가 결합해 국가가 데이터 접근과 활용 규칙을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상태다.
최고도화 단계인 5단계는 '국가 AI 주권'의 완성형인데 AI 반도체 설계부터 초대형 컴퓨팅 거점, 전력 공급망, 독자 데이터베이스, 윤리·보안 제도까지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통제하는 구조다.
현실적으로 AI의 복잡한 공급망을 고려할 때 완벽한 고립형 자급자족은 불가능해 글로벌 공급망과 상호의존을 유지하면서도 핵심 인프라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는 게 실질적인 목표로 거론된다.
◇ 미·중은 AI 공급망 선도…유럽·일본·중동도 국가 전략 강화
이런 측면에서 4단계 이상의 독자 AI 역량을 갖춘 최상위 국가는 사실상 미국과 중국이다.
미국은 오픈AI, 구글 등 AI 원천기술 보유 기업이 즐비한 데다 엔비디아와 AMD로 AI 반도체 시장까지 장악하고 있다.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MS) 애저, 구글클라우드 등 클라우드 인프라까지 글로벌 독점 체제를 구축했다.
중국의 AI 발전 또한 무서울 정도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 속에서도 바이두, 알리바바, 화웨이, 딥시크 등을 내세워 자체 AI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더구나 중국 정부 주도의 천문학적인 투자로 국산 신경망처리장치(NPU) 고도화뿐만 아니라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건립을 강행하며 자급자족 환경을 만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AI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 다음으로 꼽히는 유럽, 일본, 중동은 국가의 전폭적인 재정 지원을 무기로 맹추격 중이다.
프랑스는 자국 스타트업 '미스트랄AI'를 국가 전략 자산으로 띄우며 유럽 AI 자립의 대표 사례가 됐다.
일본은 소프트뱅크 등 자국 주요 기업의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수조 원대 보조금을 쏟아부으며 인프라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국가들도 막대한 오일머니를 동원해 자체 AI 모델 육성과 AI 데이터센터 글로벌 허브 도약을 노리고 있다.
◇ 한국, 모델 경쟁력은 최상위권…공급망 완성이 AI 주권 관건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독자 AI 상황은 어떨까.
주요 기관과 IT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AI 모델 개발 역량만큼은 의심할 여지 없는 글로벌 최상위권으로 평가한다. 자체 기술로 초거대 AI 모델을 구축해 상용화까지 성공한 기업을 다수 보유한 국가는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면 한국이 사실상 유일하기 때문이다.
사피온과 합병한 리벨리온을 비롯해 퓨리오사AI, 딥엑스 등 토종 NPU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기업)가 급성장하며 하드웨어 인프라 분야에서도 독자 노선을 걷고 있다.
하지만 AI를 국가 공급망 전체로 넓혀서 볼 경우 우리나라의 약점 또한 명확하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AI 학습·추론에 필수적인 고성능 GPU는 전량 엔비디아 등 해외 빅테크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들 빅테크에 맞설 초대형 토종 클라우드 사업자나 막대한 전력을 수급할 AI 데이터센터 생태계도 부족한 게 현실이다.
구글처럼 전 세계 수억 명을 아우르는 초대형 플랫폼이 우리나라에 없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결국 우리나라가 AI 모델 강국이라는 타이틀을 넘어 진정한 'AI 주권 국가'로 도약하려면 개별 기업에 대한 핀셋 지원을 넘어선 거시적인 차원의 국가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AI 스타트업 관계자는 "AI 모델 고도화라는 타이틀보다는 국산 AI 반도체 육성부터 클라우드, 전력망, 데이터 보안 인프라까지 총괄하는 마스터플랜이 필수적"이라며 "글로벌 생태계와 협력하되 핵심 인프라 통제권은 우리 안방에 두는 치밀한 국가 로드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president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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