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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이순열의 K-스타트업…지역 벤처펀드가 여는 발견의 경제학

입력 2026-07-03 11: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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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문화체육관광부 집계 기준 2025년 K-콘텐츠 수출액은 149억 달러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이제 K-콘텐츠와 K-컬처는 언어와 국경을 넘어 지구촌 곳곳에서 실시간으로 향유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이순열 큐네스티 대표

[본인 제공]



"지역에는 투자할 기업이 없다."


벤처투자 업계에서 오래 반복돼 온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절반만 맞다. 지역에 기업이 없는 게 아니라, 투자자에게 익숙한 언어로 설명되는 기업이 적을 뿐이다.


수도권에는 벤처투자자가 익숙하게 만나온 창업팀이 많다. 젊고 빠르며 투자유치의 언어를 안다. 시장 규모를 슬라이드 한 장으로 설명하고 지표를 대시보드로 보여주며, 노트북 한 대로 제품을 고치고 다시 출시한다. 반면 지역의 많은 기업은 얼굴이 조금 다르다.


부산과 대구, 경남과 전북, 제주와 충청의 산업 현장에는 제조와 유통,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에서 오래 버텨온 대표들이 있다. 말은 세련되지 않지만, 이들이 붙들고 있는 문제는 절대 작지 않다. 공정의 병목, 원가 구조, 납품망의 신뢰, 지역 산업의 생존이 걸린 문제들이다.


수도권 벤처투자자에게 이런 기업은 종종 부담스럽다. 대표의 나이가 많고 사업 속도는 느리며, 기술과 산업을 이해하려면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 제조 기반 기업은 매출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설비·인증·납품처 확보라는 긴 과정을 거친다.


투자자 입장에서 시간은 곧 리스크다. 회수까지 오래 걸리면 내부수익률(IRR)은 낮아지고 사후관리 비용은 커진다. 투자자가 가까운 곳, 익숙한 언어를 쓰는 팀, 빠른 성장 그래프를 그릴 수 있는 회사를 선호하는 이유다.


그러나 그 선호가 지역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지역 기업은 처음부터 완성된 투자상품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사업계획을 다시 세우고 고객과 시장을 재정의하며, 기술의 적용 범위와 성장전략을 함께 다듬어야 한다.


수도권 창업팀에게 이미 여러 차례 제공된 액셀러레이팅과 네트워크 연결, 투자 언어 번역의 과정이 지역 기업에는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다. 손 하나 대지 않고 지역을 보면 투자할 기업이 없어 보인다. 팔을 걷고 사업을 함께 정리할 생각으로 보면, 투자할 기업은 분명히 있다.


◇ 숫자가 보여주는 불균형


숫자는 이 문제를 더 뚜렷하게 보여준다. 중소벤처기업부의 2023년 기준 중소기업 기본통계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은 829만8천915개, 종사자는 1천911만7천649명이다. 중소기업이 전체 기업 수의 99.9%, 종사자 수의 80.4%를 차지한다. 일자리 대부분이 중소기업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서울·경기·인천을 제외한 비수도권 중소기업은 약 393만6천개로 전체의 47%를 넘는다.


그런데 자본은 다르게 움직인다. 중기부는 지난해 11월 '지방시대 벤처펀드' 조성계획을 발표하며, 비수도권 창업·벤처기업이 413만 명을 고용하며 전체 벤처기업의 40%를 차지하는데도 실제 투자 비중은 20% 수준에 그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비수도권 벤처투자를 2027년까지 2조원 규모로 키우고, 전체 벤처투자 중 비수도권 비중을 현행 20% 내외에서 30%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2025년부터 2027년까지 3년간 모태펀드 출자를 마중물로 지방자치단체·지방은행·지역 거점기업이 참여하는 1조원 규모의 지방시대 벤처펀드를 새로 조성하고, 모태펀드의 지방 분야 출자 규모도 2024년 1천억원에서 2025년 2천억원으로 늘렸다.


은행이 지역 벤처투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위험가중치 특례(400%→100%)를 적용하는 등 인센티브도 마련했다.


기업의 절반 가까이는 지역에 있는데 투자금의 대부분은 수도권으로 간다. 지역에 투자할 기업이 없다는 말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투자자가 정말 지역 기업을 볼 만큼 충분히 움직였는가.


올해 모태펀드 1차 정시 출자에서도 지방시대 벤처펀드에 별도 재원이 편성됐다. 이는 예산 항목 하나를 넘어 벤처투자의 질문 자체를 바꾸는 장치다. 예전에는 지역 기업을 보며 "굳이 이 기업을?"이라고 물었다. 멀고 어렵고 익숙하지 않으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 주목적 펀드를 갖게 되면 질문이 달라진다.


"왜 안 되지?", "이 정도면 가능성이 있지 않나?", "조금만 붙어서 도우면 성장의 길이 열리지 않을까?"


지역 펀드의 힘은 바로 이 질문의 전환에 있다.


◇ 해외는 지역 자본정책을 인프라로 본다


해외도 지역 자본정책을 단순 보조금이 아닌 투자 인프라로 다룬다. 미국 재무부의 주 정부 중소기업 신용지원 프로그램(SSBCI·State Small Business Credit Initiative)은 총규모가 약 100억달러에 이르는 프로그램으로, 주 정부와 지역 단위에서 중소기업·창업기업의 자본 접근성을 높이도록 설계됐다.


위스콘신주는 이 재원 가운데 5천만달러를 받아 민간 벤처캐피털의 매칭 투자를 의무화하는 방식으로 총 1억달러 규모의 위스콘신투자펀드(Wisconsin Investment Fund)를 조성했다. 이 펀드는 기술, 헬스케어, 농업, 제조업 등 지역 산업과 맞닿은 분야에 투자하며, 향후 10년간 초기 투자액의 10배가 넘는 민간 자본을 지역에 끌어들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영국 정부 소유의 정책금융기관인 영국 비즈니스은행(British Business Bank)은 '국가·지역 투자펀드'(Nations and Regions Investment Funds)를 통해 잉글랜드 각 지역 중소기업에 총 16억파운드 규모의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


그중 잉글랜드 북부를 담당하는 노던파워하우스투자펀드Ⅱ(Northern Powerhouse Investment Fund II)는 6억6천만파운드 규모로, 2만5천파운드의 소액 대출부터 500만파운드 규모의 지분투자까지 지원한다. 목적은 명확하다. 런던과 남동부에 집중된 금융 접근성을 지역으로 넓히고, 성장 잠재력이 있는 지역 기업이 자본 부족 때문에 멈추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 사례가 말하는 바는 분명하다. 지역 펀드는 시혜적 지원이 아니라 시장 실패를 교정하는 투자 인프라다. 자본은 원래 정보가 많고 네트워크가 촘촘하며 회수가 쉬워 보이는 곳으로 몰린다. 그래서 수도권에는 더 많은 투자자와 멘토, 후속 투자자가 붙고 더 많은 성공 사례가 쌓인다.


지역은 기업이 부족해서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정보, 네트워크가 부족해서 더 소외된다. 지역 펀드는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 돈만으로는 부족하다


다만 돈만 내려보낸다고 지역 기업이 성장하지는 않는다. 지역 기업의 가장 큰 병목은 자본과 함께 인재다. 좋은 기업이 있어도 청년은 떠나고, 청년이 없으니 기업은 성장하지 못한다. 이 문제를 풀려면 지역 펀드는 투자에 머물지 말고 대학, 연구기관, 대기업 협력망, 공공 조달, 판로, 채용 네트워크를 함께 움직여야 한다.


수도권 대학생이 지역 기업의 실제 과제를 수행하고, 지역 대학생이 수도권 투자자와 산업 네트워크를 만나며, 일정 기간 지역에서 살아보고 일해보는 경험을 제도화해야 한다. 지역 취업은 애국심만으로 설득할 수 없다. 일의 기회와 성장의 경로, 삶의 가능성을 함께 보여줘야 한다.


우리 재단도 최근 지역 펀드 운용을 준비하며 부산의 초기 기업을 다시 살펴봤다. 투자받지 못한 기업이 애초에 가능성이 없었던 게 아니다. 발견되지 못했고 설명되지 못했고 연결되지 못했을 뿐이다. 현장에 가서 만나고 사업모델을 함께 고치고, 고객과 투자자의 언어로 다시 번역하니 시드 투자가 가능한 기업이 보였다.


물론 공익법인인 재단의 역할은 일반 벤처캐피털과는 다르다. 그러나 이 경험은 한 가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지역 투자는 없던 기업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이미 있던 가능성을 투자 가능한 형태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지역 제조기업도 지역 안에만 머물 이유가 없다. 소부장 기업의 경쟁력은 특정 산업단지의 거래관계에서 출발하지만, 표준화와 인증, 품질관리, 해외 판로를 만나면 전국과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될 수 있다. 투자자는 바로 이 전환 지점을 찾아야 한다. 지역 기업을 지역에 갇힌 회사로 볼 것인지, 지역에서 출발한 산업 문제 해결자로 볼 것인지에 따라 투자 판단은 완전히 달라진다.


정부가 지역 펀드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운용사의 이름값이 아니다. 누가 실제로 지역을 걸어 다닐 것인가. 누가 제조와 소부장 산업의 느린 시간을 견딜 것인가. 누가 투박한 대표의 언어를 시장의 언어로 번역하고, 부족한 사업계획을 성장전략으로 바꿔낼 것인가.


지역을 모르는 운용사에 지역 펀드를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일과 다르지 않다. 지역 펀드는 자금 배분의 장치가 아니라 발견의 장치여야 한다.


지역에는 투자할 기업이 있다. 다만 엑셀 파일 위에만 있지 않고 현장의 소음과 먼지 속에 있다. '굳이'라고 지나쳤던 기업을 '왜 안 되지'라고 다시 보게 만드는 것, 그것이 지역 펀드의 진짜 힘이다.


이순열 공익법인 임팩트투자 NGO 큐네스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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