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불편하시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값싼 고분자 분리막으로 상온서 나프타·휘발유 분리
기존 정유공정 대비 에너지 31%·탄소 38% 절감

[고동연 교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조승한 기자 = 국내 연구진이 상온에서 값싼 고분자 물질만으로 원유를 거를 수 있는 차세대 분리막 기술을 개발했다.
초기 연구단계지만 기존 공정에 투입하면 에너지와 비용을 30% 이상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돼 전 세계 에너지의 10~15%를 투입해야만 하는 원유 정제 패러다임을 바꿀지 주목된다.
◇ 원유가 스스로 만드는 '나노 체'…값싼 고분자만으로 분리 성공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고동연 교수 연구팀이 원유를 끓이지 않고 값싼 고분자 물질로 상온에서 원유를 거르는 데 성공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이날 세계 최고 권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렸다.
전 세계 정유 공장은 원유를 끓였다가 식히는 '증류' 방식을 통해 원유 중 유용한 성분을 걸러내는데, 여기에만 매해 1기가와트급 대형 원전 130기가 생산하는 수준인 1천100테라와트시(TWh)를 투입된다.
이 때문에 이를 대체하기 위해 원유를 끓이는 대신 분리막으로 유용한 성분만 걸러내는 연구가 최근 이뤄지고 있다.
원유는 나프타, 휘발유 등 유용한 성분은 분자 크기가 작은 만큼 초정밀 분리를 위해 값싼 다공성 고분자 지지층에 얇은 다공성 막인 '선택층'을 코팅해 선택층이 물질을 거르도록 하는 방식이 주류였다.
연구팀도 이런 접근을 위해 시중에 나와 있는 상용 분리막을 대부분 활용했지만, 선택층에 상관없이 원유가 걸러지는 성능이 비슷하다는 걸 확인했다.
이에 연구팀은 발상을 전환해 선택층을 코팅하지 않고 값싼 다공성 고분자(PAN) 막에 원유를 그대로 흘려보내는 접근을 시도했고, 그 결과 원유를 PAN에 흘려보내는 것만으로도 맑은 투과물이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고동연 교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분석 결과 원유 속 무거운 기름 성분들이 고분자 내부 미세 구멍에 스스로 둘러붙으면서 2㎚(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정교한 미세 통로를 자발적으로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유 속 액체 상태인 선형 탄화수소가 미세 구멍 안에서 양초처럼 굳으면서 최적의 맞춤형 '체'를 스스로 만든 것이다.
이 통로를 통해 원유 속 가벼운 나프타, 휘발유, 등유 성분만 빠르게 분리됐고 무거운 찌꺼기는 완전히 걸러졌다.
이 방식은 기존 보고된 원유 분리막 대비 23배나 빠른 분리 속도를 기록했고, 28일간 원유 분리를 지속해도 성능 저하가 일어나지 않았다.
◇ "에너지 31% 절감"…3~5년 내 상용화 기대
연구팀은 원유를 이 분리막에 통과시켜 나프타와 휘발유 등을 먼저 분리하고 남은 성분만 기존 증류탑에서 증류하면 에너지를 31.6%,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37.6%를 감축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운영비도 36% 절감하는 효과를 낳고, 국내 정유·화학 전반에 확대 적용하면 연간 1천만 t의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승용차 400만 대가 1년간 내뿜는 양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연구팀은 15㎚ 구멍 크기를 가진 PAN뿐 아니라 40~50㎚ 구멍에서도 이런 현상을 유도해 낼 수 있고, 비슷한 기공을 갖는 다른 고분자 소재에서도 가능함을 확인해 확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고 교수는 22일 세종 과기정통부 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원유는 아라비안 라이트만 활용했지만 전 세계 각지 원유를 분석하며 차이 여부 등을 검증하면 3~5년 내 상용화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향후에는 막을 2~4단계 추가해 증류탑이 하는 증류 과정을 막으로 처리하는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는 다른 연구와 달리 원유를 바로 활용하는 실용적 접근법을 통해 이뤄낼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고 교수는 "분리막과 혼합물이 만나 스스로 최적의 분리 통로를 빚어낸다는 과학적 원리를 규명해낸 성과"라며 "실제 원유를 공급해 준 HD현대오일뱅크와 긴밀하게 협력한 덕분에 산업 현실에 맞닿은 수준까지 검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동 교신저자인 이재우 KAIST 교수는 "향후 국내 정유·석유화학 공정 곳곳에 끼워 넣을 수 있는 대면적 모듈화 기술과 장기 운전 기술을 완성해 증류가 지배해 온 정유 산업을 분리막 공정으로 전환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shjo@yna.co.kr
Copyright 연합뉴스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상품 확인하고 계속 읽어보세요!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