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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신종근의 K-리큐르 이야기…조선의 은밀한 사치, 벌꿀술의 귀환

입력 2026-06-16 14: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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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다양한 미드(꿀술)

[제조사 홈페이지 캡처]



인류가 가장 먼저 맛본 술은 무엇이었을까.


흔히 와인이나 맥주를 떠올리지만, 고고학과 주류사 연구에서는 벌꿀술인 '미드'(Mead)를 가장 오래된 형태의 술 가운데 하나로 본다.


농경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사람들은 자연 상태의 꿀과 물이 야생 효모를 만나 발효되는 현상을 경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숲속 나무 구멍이나 바위틈에 고인 꿀물이 자연스럽게 술이 되는 과정은 인류가 알코올을 접하게 된 초기 모습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최근 이 오래된 술이 세계 크래프트 주류 시장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때 북유럽 신화나 중세 이야기 속 술로 여겨졌던 미드는 이제 한국에서도 새로운 주류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미드는 서구권에서 오랜 역사와 상징성을 지닌 술이다. 고대 북유럽의 바이킹들은 연회와 축제에서 벌꿀술을 즐겼으며, 고대 신화 속 신들의 음료인 '넥타르'(Nectar)를 미드와 연결해 해석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처럼 오랜 전통을 가진 미드는 최근 크래프트 주류 시장의 성장과 함께 새로운 모습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천연 꿀이 가진 향과 단맛을 기반으로 과일, 향신료, 허브 등을 더할 수 있다는 점은 개성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꿀을 이용한 술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와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 등에는 꿀을 활용한 술 제조법이 기록돼 있다. 이들 문헌은 오늘날 한국형 미드의 역사적 뿌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조선 사회에서 주류 문화의 중심은 쌀과 보리를 이용한 곡주였다. 반면 꿀은 귀한 감미료이자 약재였다. '동의보감' 역시 꿀의 효능을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귀한 꿀을 이용해 술을 빚는 일은 일반 백성들이 쉽게 누릴 수 있는 문화가 아니었다. 꿀술인 밀주(蜜酒)는 왕실이나 일부 상류층에서 소비되던 고급 주류에 가까웠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한국 전통주 역사 속에는 이 같은 꿀술 문화가 존재해 왔다.


최근 한국에서 미드가 다시 주목받는 배경에는 크래프트 주류 문화의 성장과 소비자 취향의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과거에는 높은 도수와 음주량이 중요하게 여겨졌다면, 오늘날 소비자들은 술의 맛과 향, 생산자의 철학, 원재료의 이야기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특히 MZ세대는 술을 기호식품만이 아니라 취향을 표현하는 문화 콘텐츠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미드는 이러한 변화와 잘 맞아떨어진다. 천연 꿀이 주는 부드러운 단맛과 다양한 스타일의 확장성은 새로운 주류 경험을 찾는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한국 미드 시장은 전국 각지의 미더리(Meadery·꿀술 양조장)가 이끌고 있다. 이들은 밤꿀, 아카시아꿀, 야생화꿀 등 지역 특산 꿀을 활용해 한국만의 개성을 담은 미드를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경기 용인의 '부즈앤버즈 미더리'다. 이들의 전신은 국내 파인다이닝 업계에서 주목받았던 '곰세마리 양조장'이다. 유관석 대표는 국제 홈브루잉 미드 대회에서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대표 제품 '시작'(Sijak)은 야생화 꿀의 향과 탄산감이 특징이다. '호피허니버니'는 홉을 활용해 미드와 크래프트 맥주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스타일을 보여준다.




부즈앤버즈 미더리의 미드들

[제조사 홈페이지 캡처]


경기도 김포의 농업회사법인 '메들리'(Medley) 역시 주목할 만한 생산자다. 지역 양봉 농가와 협력해 확보한 국산 꿀을 바탕으로 다양한 미드를 생산하고 있다. 대표 제품 '아카시아'는 아카시아꿀 특유의 꽃향기와 과일 향이 조화를 이루며 비교적 드라이한 마무리를 보여준다. 또 '블루베리 꿀술'은 멜로멜(Melomel) 스타일로 산미와 과일 풍미가 특징이다.


여기에 같은 김포에서 생산되는 '코아베스트브루잉'의 실험적인 행보도 눈길을 끈다. 꿀을 끓여 캐러멜화한 뒤 발효시키는 '보쉐'(Bochet) 기법을 활용한 '사워보쉐'는 특유의 새콤달콤함으로 식전주로 제격이다. 나아가 알코올 도수 22도의 묵직한 '포트미드'를 오크통에 숙성해 내놓거나, 블루베리 등 과일을 접목하는 등 과감하고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경기 남양주의 청년 양조장 '술빚는호랑이'는 지역의 사계절을 미드로 풀어낸다. 계절마다 다른 꽃에서 채밀한 꿀의 맛이 미묘하게 달라진다는 점에 착안해 '시즌(야생화꿀)'과 '벚꽃시즌(벚꽃꿀)' 등 자연의 시간에 기댄 미드를 빚는다. 또한 꿀술에 직접 얼그레이 찻잎을 우려내어 홍차 풍미를 더한 '로얄그레이', 크래프트 맥주의 홉(Hop)을 결합해 아로마를 입힌 '호피홉' 등 개성 강한 MZ세대의 취향을 정확히 찌르는 제품으로 호평받고 있다.




술빚는 호랑이의 미드들

[제조사 홈페이지 캡처]


충남 공주의 '석장리미더리'는 멜로멜 스타일에 특화된 양조장이다. 대표 제품 '석장리꿀술'은 공주 특산 배와 생강, 레몬그라스를 활용해 산뜻한 향을 구현했다. 또 다른 제품인 '졸인꿀술'은 꿀을 장시간 졸여 발효한 뒤 바닐라 빈을 더해 깊은 카라멜 향과 같은 풍미를 표현했다.


강원도 춘천의 '미더리봉자'는 대표가 직접 양봉한 벌꿀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생산부터 양조까지의 과정을 직접 관리하며 자연 발효에 가까운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대표 제품인 '비왈츠'(Bee Waltz) 시리즈는 화사한 꿀 향과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경기 양평 아이비영농조합의 '허니문와인'은 국내 벌꿀술 시장에서 꾸준히 사랑받아온 제품이다. 지역에서 생산한 꿀을 활용해 미드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비교적 친숙하게 구현하고 있으며, 지역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인 사례로도 평가받는다.


오늘날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드의 부활은 그저 해외 트렌드를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고문헌 속 밀주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지역 양봉 산업과 크래프트 주류 문화를 결합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가깝다.


가볍고 개성 있는 술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가운데 한국산 미드는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독특한 주류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수천 년 전 인류가 처음 경험했던 벌꿀술은 이제 한국의 지역성과 창의성을 담아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신종근 전통주 칼럼니스트


▲ 전시기획자 ▲ 저서 '우리술! 어디까지 마셔봤니?' ▲ '미술과 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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