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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 제공]
◇ '실패할 자유'에서 혁신이 산다
국내에서 정부가 주도하는 연구개발(R&D) 과제의 성공률은 해마다 90% 후반대를 기록하고 있다. 정량적 지표나 숫자만 놓고 보면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 첨단 기술 패권을 주도하는 과학기술 강국이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미래 모빌리티의 핵심인 자율주행을 비롯해 인공지능(AI), 바이오, 양자기술 등 첨단 산업의 현실을 냉정하게 돌아보면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국책 과제에서 성공 판정을 받은 수많은 기술 가운데 실제 시장에서 상용화되거나 글로벌 표준을 주도하는 사례는 기대만큼 많지 않다.
이러한 괴리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필자는 그 원인 중 하나로 '성공만을 강조하는 연구개발 문화'를 꼽고 싶다.
과학기술의 역사는 단 한 번도 완벽한 계획의 산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실험실의 실수와 예상치 못한 오류, 그리고 그것을 끝까지 추적한 집요함이 인류의 운명을 바꾸어 왔다. 1896년 프랑스의 물리학자 앙리 베크렐은 우라늄 염이 햇빛을 받았을 때 X선과 유사한 투과력을 가진 인광을 방출하는지 연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흐린 날씨가 계속되면서 실험이 중단되었고, 그는 우라늄 시료와 사진 건판을 서랍 속에 보관하게 됐다. 이후 건판을 확인하던 그는 햇빛에 노출되지 않았음에도 건판이 감광된 사실을 발견했고, 이를 통해 우라늄이 외부 에너지 없이 스스로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것이 인류가 방사능 현상을 처음 인식하게 된 계기였다.
백신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이 파스퇴르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닭 콜레라를 연구하던 중 우연히 조수의 실수로 독성이 약해진 배양액을 닭에게 주입하게 됐다. 실험은 실패한 것처럼 보였으나, 파스퇴르는 이 닭들을 폐기하지 않고 추적했다. 이후 이 닭들이 강한 병원균에도 감염되지 않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약독화된 병원체가 면역을 형성할 수 있다는 백신 원리를 확인하게 됐다.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은 휴가에서 돌아온 뒤 세균 배양 접시 일부가 푸른곰팡이에 오염된 것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연구자라면 폐기했을 상황이었지만 그는 곰팡이 주변에서 세균이 자라지 못하는 현상에 주목했고, 결국 인류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발견했다. 과학기술의 역사는 성공의 기록이 아니라 실패를 해석한 기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자율주행 AI가 학습하는 것도 결국 '실패 데이터'
오늘날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의 최전선에 있는 자율주행 AI 역시 같은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많은 사람은 자율주행의 핵심 경쟁력을 고성능 반도체나 정교한 센서에서 찾는다. 물론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글로벌 선도 기업들이 진정으로 경쟁하는 영역은 따로 있다. 바로 실패 데이터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축적하고 학습하는가다.
테슬라는 전 세계 수백만 대 차량을 거대한 이동형 연구소로 활용하고 있다. 운전자가 직접 차량을 조작하는 상황에서도 차량 내부 AI는 끊임없이 주변 환경을 예측한다. 예를 들어 사람이 자연스럽게 통과한 교차로에서 AI가 정차를 선택했거나, 반대로 AI의 판단과 실제 운전자 행동 사이에 차이가 발생했다면 이는 매우 가치 있는 학습 데이터가 된다. 테슬라는 이러한 예측 불일치와 운전자 개입(Intervention) 사례를 수집·분석해 신경망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웨이모 역시 다양한 도심 환경에서 발생하는 예외 상황과 복잡한 교통 시나리오를 대규모 시뮬레이션 환경인 '카크래프트'(Carcraft)에서 반복적으로 검증해 왔다. 실제 도로에서 경험한 많은 '에지 케이스'(Edge Case)를 가상 공간에서 재현하고, AI가 다양한 대응 방식을 학습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결국 자율주행 기술의 경쟁력은 문제없이 달린 수백만 킬로미터의 기록보다 시스템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한 데이터에서 나온다. 자율주행 분야에서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은 완벽한 성공 데이터가 아니라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낸 오류 및 드라이버 개입 데이터, 즉 에지 케이스인 셈이다.
◇ 자율주행 스타트업은 왜 과감한 도전을 망설이는가
자율주행 산업에서는 실패를 대하는 사회적 시선 또한 혁신의 속도를 결정한다.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서비스는 오류가 발생하더라도 업데이트를 통해 개선할 수 있지만, 자율주행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기술이기에 단 한 번의 사고도 치명적인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온다.
문제는 이러한 특성이 특히 스타트업에게는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글로벌 자율주행 선도기업인 웨이모나 테슬라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자본력과 방대한 데이터, 대규모 법무·보험 체계를 갖추고 있어 사고 발생 이후에도 기술 개선과 사업 지속이 가능하다.
반면 국내 스타트업의 사정은 완전히 다르다. 실제 도로 실증 과정에서 중대한 사고가 단 한 번이라도 발생하면, 막대한 손해배상 책임과 투자 위축, 신뢰도 추락이 동시에 몰려와 기업 존립 자체가 뿌리째 흔들린다. 실패가 곧 '파산'으로 직결되는 구조다.
이러한 공포 속에서 과감한 도전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기술적으로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영역임에도, 기업들은 결국 통제 가능한 안전한 도로와 제한된 환경만을 선택하게 된다. 그 결과 산업 전체가 축적해야 할 가치 있는 에지 케이스와 실패 데이터 확보가 원천 차단되고, 글로벌 기업과의 기술 격차는 더욱 벌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실제로 자율주행 AI의 성능 향상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의 오류 경험과 그에 대한 학습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사고 발생에 따른 사회적·경제적 비용이 기업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면 누구도 새로운 시도를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혁신은 용기 있는 도전에서 시작되지만, 그 도전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안전망이 없다면 혁신은 시작조차 하기 어렵다.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은 연구개발 과정에서 성실하게 과제를 수행한 경우 그 결과만으로 연구자를 제재하지 않도록 하는 '성실한 실패' 제도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의 연구자들이 체감하는 분위기는 여전히 다르다. 과제가 실패로 평가될 경우 뒤따르는 복잡한 소명 절차와 감사 부담, 향후 연구과제 선정에 대한 우려 때문에 연구자들은 자연스럽게 성공 가능성이 높은 과제에 집중하게 된다.
그 결과 실패 가능성이 높은 도전적 연구보다는 검증된 기술을 조금 개선하는 연구가 선호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만약 플레밍이나 파스퇴르가 오늘날의 우리나라 R&D 평가 체계 속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오염된 배양 접시나 독성이 약해진 균을 연구 성과가 아닌 단순한 실험 실패로 판단하고, 후속 행정 절차나 불이익이 두려워 진즉에 폐기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성공률'이 아니라 '혁신율'을 평가해야
실패 자체는 단기적인 비용일 수 있다. 그러나 실패의 과정에서 얻은 데이터와 노하우까지 사장시키는 것은 치명적인 국가적 손실이다. 특히 자율주행, 인공지능, 바이오, 양자기술과 같은 미래 산업은 본질적으로 실패와 시행착오를 필수 전제로 성장하는 분야다. 실패를 원천적으로 제거하려는 순간 혁신 역시 사라질 수밖에 없다.
정부 R&D 정책 역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논문 수와 특허 수를 중심으로 한 기계적 정량 평가에서 과감히 벗어나 기술 축적 수준과 시장 파급력, 산업 생태계 기여도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
미국 고등연구계획국(DARPA)처럼 성공 가능성은 작지만, 파급력은 매우 큰 도전형 과제에 과감히 투자하고, 최종 목표 달성에는 실패하더라도 과정에서 확보한 데이터와 알고리즘, 실증 결과를 국가적 자산으로 인정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특히 자율주행과 같은 고위험 신산업 분야에서는 기술적 위험을 기업이 단독으로 짊어지는 독소적 구조를 깨야 한다.
정부가 주도해 공공 보험체계와 실증 안전기금, 책임 분담 제도를 마련해줘야만, 연구자와 스타트업이 파산의 공포 없이 혁신의 전장으로 뛰어들 수 있다.
정부 R&D의 역할은 연구자들을 실패하지 않는 온실 속에 가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글로벌 기술 경쟁이라는 거친 운동장에서 마음껏 도전하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두터운 안전망을 제공하는 데 있다. 자율주행과 인공지능, 바이오와 양자기술이 주도할 미래 산업 경쟁에서 필요한 것은 실패를 징벌하는 문화가 아니다. 실패를 축적하고, 해석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게 만드는 혁신 문화다.
세상을 바꾸는 파괴적 혁신은 언제나 성공의 순간이 아니라 실패를 자산으로 전환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정광복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KADIF) 단장
▲ 도시공학박사(연세대) ▲ 교통공학 전문가·스마트시티사업단 사무국장 역임 ▲ 연세대 강사·인천대 겸임교수 역임 ▲ 서울시 자율주행차시범운행지구 운영위원 ▲ 한국도로공사 고속도로자율주행 자문위원 ▲ 강릉 ITS 세계총회 조직위 위원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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