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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석수선의 K-디자인 이야기…美데이터랜드가 한국에 던진 화두-③

입력 2026-06-12 09: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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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석수선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

[본인 제공]



◇ AI 시대, 한국 디자인은 '도구'를 넘어 '제도'를 상상해야


지난 칼럼을 통해 살펴본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데이터랜드'는 새롭게 나타난 하나의 인공지능(AI) 전시관이 아니었다. 전시, 데이터, 교육, 연구, 창작자 지원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여 영구히 돌아가는 문화 인프라였다. 윤리적으로 수집한 자연 데이터로 만든 '라지 네이처 모델', 계속 진화하는 '리빙 인사이클로피디아', 디자이너와 건축가까지 품는 'AI 아티스트 레지던시'까지. 이 모든 장치는 결국 하나의 질문을 향한다. 'AI라는 새로운 기술을 우리 사회가 어떤 제도와 구조 안에 자리 잡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이제 시선을 한국으로 돌려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 디자인의 기초 체력은 결코 약하지 않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 디자인산업의 규모는 18.6조 원, 종사자는 30.7만 명, 디자인이 만들어내는 경제적 가치는 159.9조 원에 이른다. 디자인은 이미 회사의 겉모습을 꾸미는 일이 아니라 제품과 서비스, 브랜드 전체를 움직이는 핵심 산업이 됐다.


이런 튼튼한 기반 위에서, 정부와 공공기관의 움직임도 빠르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운영하는 '2026년 디자인-기술협업 인력 지원사업'은 중소·중견기업에 제품, 포장, 시각, 서비스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를 매칭해 인건비를 지원한다. 기업이 디자인을 더 쉽게 활용하도록 돕고,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목표다.


시민이 직접 체험하는 행사도 활발하다. 서울시는 지난 2월 28일부터 3월 1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서울 AI 페스티벌 2026'을 열었다. 'AI가 내게 말을 걸었다'는 주제로 진행된 이 행사에서 시민들은 휴머노이드 로봇, 웨어러블 기기, AI 갤러리 등을 직접 만지고 체험했다. 어려운 기술 이야기를 디자이너의 감각으로 풀어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경험으로 바꿔낸 좋은 사례다.


이렇게 교육, 기업 지원, 공공 행사라는 세 가지 축이 함께 돌아가는 한국의 속도는 세계적으로도 빠른 편이다. 우리는 이미 AI를 멀리서 구경하는 단계를 지나, 실제로 활용하고 시민과 함께 즐기는 단계에 들어섰다.


하지만 여기서 데이터랜드가 던진 질문을 다시 떠올려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빨리 배우고, 행사를 자주 여는 것만으로 우리가 미래의 문화를 이끌어간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절반은 맞고, 절반은 그렇지 않다.


데이터랜드가 진짜 보여주는 것은 '꾸준한 축적'과 '제도화'다. 그곳에서는 전시, 데이터, 교육, 연구, 보관소가 하나의 틀 안에서 계속 쌓이고 이어진다. 반면 한국은 개별 교육이나 한 번의 행사는 활발하지만, 이것들이 10년, 20년 뒤를 내다보는 장기 보관소나 연구 플랫폼, 데이터 윤리 기준, 공공 컬렉션으로 단단하게 묶이는 단계까지는 아직 가지 못했다.


쉽게 말해 지금 한국 디자인은 AI라는 도구를 '어떻게 더 잘 쓸까'에 집중하고 있다. 반면 데이터랜드는 'AI를 우리 사회의 자산으로 어떻게 쌓고 제도로 만들까'를 먼저 묻는다. 앞의 질문은 '도구'에 관한 것이고, 뒤의 질문은 '구조'에 관한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큰 차이를 만드는 건 언제나 두 번째, 구조에 관한 질문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뛰어난 기술이 아니라 '제도적 상상력'이다. 멋진 AI 이미지를 몇 초 더 빨리 만들어내는 능력만으로는 미래의 디자인을 이끌 수 없다. 정말 중요한 건, AI가 만들어내는 데이터와 창작물을 어떤 사회적 구조 안에 담을 것인가다. 어떤 윤리적 기준으로 데이터를 모을지, 어떤 기관이 이를 영구히 보관하고 연구할지, 시민들이 소외되지 않고 이 자산에 참여할 방법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한국 디자인에 부족한 건 디자이너의 재능이나 변화의 속도가 아니다. 산업 기반은 세계적 수준이고, 교육과 현장의 변화도 놀랍도록 빠르며, 시민들이 참여할 공공의 장도 충분히 열려 있다. 남은 과제는 단 하나, 이미 갖춘 이 역량들을 어떤 공공의 언어와 어떤 지속 가능한 구조로 묶어낼 것인가다. 디자이너에게 새로운 소프트웨어 하나를 더 가르치는 것보다, 우리가 이룬 기술적 성취를 사회적 자산으로 쌓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큰 그림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데이터랜드는 'AI도 예술이 될 수 있는가'는 낡은 논쟁을 벌이는 곳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본질적인 물음, 즉 "AI라는 강력한 기술을 다루는 우리 사회는 어떤 품격 있는 문화 제도를 가질 자격이 있는가"를 묻는 공간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더 이상 멀리 떨어진 로스앤젤레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한국 디자인도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AI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소비국'을 넘어, AI 시대의 문화를 스스로 만들고 지키며 모두를 위한 감각으로 번역해 내는 '문화 발신국'이 될 수 있을까. 데이터랜드가 우리에게 던진 진짜 질문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석수선 디자인전문가


▲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박사(영상예술학 박사) ▲ 디자인 크리에이티브 기업 ㈜카우치포테이토 대표 ▲ 연세대학교 디자인센터 아트디렉터 역임 ▲ 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 ▲ 한예종·경희대·한양대 겸임교수 역임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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