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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임기범의 AI혁신 스토리…싸우면서 규칙 쓴 美中과 한국의 입장

입력 2026-06-09 14: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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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베이징 미중 정상회담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신화=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이 싸우는 것은 익숙한 일이다. 그러나 두 나라가 싸우면서도 기술 질서의 기본 규칙을 함께 관리하려 한다면, 이야기는 훨씬 복잡해진다. 갈등은 선택을 강요하지만, 관리된 경쟁은 자리 자체를 빼앗는다.


지난달 베이징에서 열린 트럼프-시진핑 미중 정상회담은 그 가능성을 가시화했다. 회담에서 양국은 인공지능(AI) 안전장치와 리스크 통제를 위한 정례 대화 채널 구축을 논의했다. AI 모델의 오작동, 자율 무기체계의 위험성, 비국가 단체의 AI 악용 등을 공동으로 관리하겠다는 구상이다. 표면적으로는 긴장 완화이고, 국제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필요한 대화다. 그러나 첨단기술 영역에서 강대국의 대화는 언제든 규칙 제정의 장으로 바뀔 수 있다.


한국이 경계해야 할 것은 미중 중 어느 한쪽의 압박만이 아니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두 나라가 경쟁의 이름으로 세계 기술 질서의 상단을 나눠 갖는 상황이다.


◇ "두뇌는 미국, 몸통은 중국"


AI 시대의 기술 질서는 단순히 누가 더 좋은 제품을 만드느냐로 결정되지 않는다. 누가 모델을 평가하는가, 누가 칩 접근권을 통제하는가, 누가 공급망의 병목을 쥐고 있는가, 누가 안전성 기준을 쓰는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미국은 AI 모델과 클라우드, 고성능 반도체, 소프트웨어 플랫폼에서 압도적 우위를 갖고 있다. 특히 중국 기업의 제3국 법인이나 우회 경로를 통한 고성능 칩 접근까지 차단하는 방향으로 수출통제의 빈틈을 좁혀가고 있다. AI 시대의 핵심 자원인 컴퓨팅 접근권을 전략 자산으로 다루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중국은 AI가 현실 세계에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물리적 공급망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배터리, 태양광, 희토류, 전기차, 제조 설비, 로봇 공급망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태양광 제조 가치사슬에서 중국의 점유율은 폴리실리콘 96%, 웨이퍼 98%, 모듈 86%에 달한다. 리튬이온 배터리 공급망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은 80%를 웃돈다. AI의 두뇌가 미국 쪽에 있다면, AI가 현실 세계에서 움직이는 몸통의 상당 부분은 중국 공급망과 연결된 셈이다.


◇ 'AI판 NPT'의 유혹


이 조합이 위험한 이유는 분명하다. 미국과 중국이 꼭 화해할 필요도 없다. 반도체와 군사기술, 데이터와 플랫폼, 공급망을 둘러싼 충돌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양국은 서로의 병목을 인정한 채 충돌을 '관리'하려 할 수 있다. 미국은 고성능 AI와 컴퓨팅 접근권을 관리하고, 중국은 제조·에너지·소재 공급망의 영향력을 유지한다. 그리고 안전, 책임, 비확산이라는 언어로 제3국이 따라야 할 기준을 만든다.


이 흐름이 더 진전되면 AI 분야에서도 일종의 'AI판 NPT(핵확산금지조약)'가 등장할 수 있다. 핵확산금지조약은 핵무기를 이미 가진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의 지위를 제도적으로 구분한 질서였다. AI에서도 비슷한 유혹이 생길 수 있다. 프런티어 AI 모델, 고성능 반도체,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인프라를 보유한 나라들이 먼저 규칙을 쓰고, 나머지 국가들은 안전성과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접근 조건을 승인받는 구조다. AI는 핵무기와 다르다. 그러나 강대국이 기술 접근권을 관리하기 위해 안전과 비확산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경계할 만하다.


◇ 한국이 직면한 위험


한국의 불편함은 여기에 있다. 한국은 반도체를 만들고, 배터리도 만들며, 자동차와 로봇, 통신망과 제조 현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최상위 규칙을 정하는 힘은 아직 약하다. 제조 역량은 강하지만 플랫폼 지배력은 제한적이고, 동맹은 있지만 전략 자율성은 좁다.


최악의 장면은 미중 중 한쪽을 선택하라는 압박만이 아니다. 더 나쁜 상황은 미국이 AI 안전성 평가와 컴퓨팅 접근 규칙을 정하고, 중국이 핵심 소재와 물리적 공급망의 조건을 정한 뒤 한국에는 "호환성만 맞추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 경우 한국은 겉으로는 기술 선진국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규칙 수용국이 된다. 제품은 만들지만 기준은 남이 정하고, 부품은 공급하지만 플랫폼은 남이 운영하며, 시장에는 참여하지만 의사결정 테이블에는 앉지 못한다.


이는 산업 경쟁의 문제가 아니다. AI 시대의 기술 주권 문제다. 앞으로의 주권은 국경선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모델을 평가하는 기준, 데이터를 이동시키는 규칙, 칩을 배분하는 조건, 로봇과 에너지 인프라의 안전 기준을 누가 쓰느냐가 새로운 주권의 일부가 된다.


따라서 한국이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어느 편에 설 것인가가 아니라, 어느 기술 계층에서 우리가 규칙을 만들 수 있는가다.


모든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앞서겠다는 말은 공허하다. 그러나 한국이 반드시 붙잡아야 할 영역은 있다. AI 반도체와 메모리, 첨단 패키징, 전력 효율 기준, 제조 AI의 안전성,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ESS) 운영 규칙, 로봇의 책임성과 인증 체계가 그것이다. 여기에 AI 모델 평가, 산업 데이터 처리, 소프트웨어 품질과 감사 기준까지 더해져야 한다. 이 영역에서 한국은 단순 생산자가 아닌 표준 제안자가 되어야 한다.


정부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국가대표 AI 모델을 뽑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모델이 국제 안전성 평가를 통과할 수 있는지, 어떤 산업 데이터가 해외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고 활용될 수 있는지, 어떤 반도체와 전력 인프라가 AI 시대의 병목을 줄일 수 있는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기업 역시 단기 수주와 보조금 경쟁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국제 표준화 회의, 안전성 평가 체계, 공급망 리스크 분석에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미중이 서로 싸우는 세계는 어렵다. 그러나 미중이 싸우면서도 자기들끼리 규칙을 정하는 세계는 더 어렵다. 전자는 선택을 강요하지만, 후자는 자리 자체를 빼앗는다. 한국이 지금 해야 할 일은 강대국의 갈등을 해설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앉을 의자를 직접 만드는 일이다. 첨단기술 질서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임기범 인공지능 전문가


▲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대학교(aSSIST) 객원교수 ▲ 현 AI경영학회 상임이사 겸 학술분과 위원장 ▲ ㈜컴팩 CIO ▲ 신한 DS 디지털 전략연구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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