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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본인 제공]
◇ 한 번 보고 나오는 미술관이 아닌 '배우고 만드는' 생태계
미국 LA 데이터랜드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미술관을 그저 '작품을 걸어두는 건물'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통 우리가 떠올리는 미술관은 표를 끊고 들어가 한 바퀴 둘러본 뒤 나오면 끝나는 공간이다. 데이터랜드는 전시를 보고, 직접 배우고, 자료를 연구하고, 그 결과를 다시 쌓아두는 과정이 하나로 맞물려 돌아가도록 처음부터 설계됐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살아있는 백과사전'(Living Encyclopedia) 섹션이다. 책장에 꽂힌 두꺼운 백과사전을 떠올려 보자. 한 번 인쇄되면 내용은 그대로 굳어버린다. 반면, 이 백과사전은 AI가 새로운 자료를 받아들이며 스스로 계속 자라난다. 멈춰 있는 지식이 아니라, 자라는 지식인 셈이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가격이다. 운영진은 이 플랫폼을 월 10달러(약 1만3천 원) 수준에 공개해, 학생이나 일반인도 부담 없이 쓸 수 있게 했다. 첨단 인공지능(AI) 기술을 소수 전문가의 전유물로 가두지 않겠다는 뜻이다.

[데이터랜드 홈페이지 캡처]
사용법도 어렵지 않다. 목적에 따라 세 가지 길이 열려 있다. 자료를 깊이 파고들고 싶은 사람은 '리서치 모드'에서 방대한 자연 데이터를 직접 탐색하고 궁금한 점을 물어볼 수 있다. 무언가 만들어 보고 싶은 사람은 '크리에이트 모드'에서 과학적 사실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예술적인 이미지를 직접 뽑아낼 수 있다. 그저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드림 모드'에서 영상과 소리, 손짓이 한데 어우러진 방식으로 자연을 다시 체험하게 된다. 보기만 하던 미술관이, 누구나 지식과 감각을 직접 다뤄보는 열린 작업대로 바뀐 것이다.
데이터랜드는 한발 더 나아가 미래의 창작자를 직접 길러내는 일까지 맡는다. 구글 아트 앤 컬처(Google Arts & Culture)와 손잡고 운영하는 '데이터랜드 AI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대표적이다. 6개월간 엄격한 심사를 거쳐 뽑힌 4명에게는 프로젝트당 2만5천 달러(약 3천만 원 이상)의 지원금과 일대일 멘토링이 주어진다. 여기에 생성형 AI를 돌리는 데 꼭 필요한 구글 클라우드와 데이터랜드의 초고성능 연산 장비를 마음껏 쓸 수 있는 권한, 그리고 작품을 세계 무대에 선보일 기회까지 따라온다.
특히 주목할 점은 문을 열어둔 대상의 폭이다. 이 프로그램은 이름난 순수 예술가만 받지 않는다. 디자이너, 건축가, 무대에서 공연하는 사람, 대학에서 연구하는 학자, 그리고 기술을 예술처럼 다루는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로지스트'까지 모두 환영한다. 완성된 작품만 모아 벽에 거는 옛날 방식을 벗어나, AI 시대의 창작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고, 또 사회적으로 어떻게 토론돼야 하는가'를 통째로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결국 데이터랜드는 미술관이자 연구실(Lab)이고, 작업장이자 토론의 광장 역할까지 동시에 떠안은 셈이다.
◇ 한국 디자인의 탄탄한 기반…이제는 '도구'를 넘어 '구조'로
이 거대한 해외의 실험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 현실로 눈이 옮겨간다. 데이터랜드를 '바다 건너 신기한 구경거리'로만 넘길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이 던진 질문이 곧 우리 사회의 숙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AI라는 새 기술을 잠깐 전시하고 끝내는 행사가 아니라, 데이터·교육·연구·공공성·창작 지원·기록 보존까지 하나의 틀로 묶어낼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데이터랜드가 보여주는 것은 '기술의 미래'가 아니라 '문화를 운영하는 방식의 미래'다.
그렇다면 한국의 형편은 어떨까.
먼저 짚어둘 사실은, 우리 디자인의 바탕이 절대 약하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 통계 사이트 e-나라지표의 2023년 공식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디자인산업 규모는 18조6천억 원에 이른다. 현장에서 일하는 디자인 인력은 30만7천 명, 디자인 전문업체는 2만44개에 달한다. 기업들의 디자인 활용률은 37.3%이고, 디자인이 만들어내는 경제적 가치는 무려 159조9천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 숫자의 뜻은 명확하다. 디자인은 더 이상 '예쁘게 꾸미는 일'에 머무는 보조 업무가 아니다. 우리가 매일 쥐는 스마트폰, 손가락으로 넘기는 앱 화면, 마트에서 집어 드는 제품의 포장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은 기업의 경쟁력을 최전선에서 끌어가는 핵심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은 이미 '디자인을 잘하는 나라'를 넘어, 디자인이 경제를 움직이는 나라가 된 것이다.
이런 바탕 위에서 현장의 변화 속도도 눈부시다. 한국디자인진흥원(KIDP)은 당장 2026년 현재 일하는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생성형 AI를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다루는 능력(AI 리터러시), AI에 명령을 내리는 프롬프트 설계, AI로 시장 흐름을 읽고 디자인 콘셉트를 뽑아내는 법, 나아가 짧은 영상(숏폼)을 직접 만들어 보는 실습까지 매우 구체적인 교육을 발 빠르게 운영하고 있다.
AI가 디자이너에게 낯선 바깥의 기술이 아니라, 날마다 손에 쥐는 기본 도구로 완전히 스며들었다는 증거다. (3편에서 계속)
석수선 디자인전문가
▲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박사(영상예술학 박사) ▲ 디자인 크리에이티브 기업 ㈜카우치포테이토 대표 ▲ 연세대학교 디자인센터 아트디렉터 역임 ▲ 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 ▲ 한예종·경희대·한양대 겸임교수 역임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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