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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정광복의 K-자율주행 도전기…블랙박스 된 AI, 법규 위반 딜레마

입력 2026-06-04 10: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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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합니다.]




정광복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장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 제공]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법의 사슬 속에 있다."


18세기 철학자 장 자크 루소의 이 문장은 오늘날 자율주행차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인간은 법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 존재하지만, 공동체는 법이라는 약속 위에서 유지되고 있다. 문제는 이제 도로 위에 등장한 새로운 존재, 인공지능(AI)이 그 약속을 이해할 수 있는가에 있다.


최근 글로벌 자율주행 산업은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자율주행은 수십만 줄의 C++ 코드로 "A의 상황에서는 B를 하라"고 일일이 지정해 주던 규칙 기반(Rule-based) 소프트웨어가 차량을 움직이는 전통적 로봇공학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센서 입력부터 차량 제어까지 하나의 거대한 신경망으로 연결하는 엔드투엔드(End-to-End, E2E)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자동차는 점차 '움직이는 컴퓨터'를 넘어 '생각하는 로봇'으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최근 중국 베이징 모터쇼와 MWC 바르셀로나에서 업계가 공통적으로 강조한 키워드는 '물리적 AI'(Physical AI)였다. 이는 AI가 그저 가상 공간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수준을 넘어 중력, 마찰력, 관성, 기후 변화와 같은 현실 세계의 물리 법칙을 학습하고 이해하는 단계에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 인간의 '악습'까지 복제한 AI


E2E 기술의 가장 큰 강점은 인간다움이다. 과거 규칙 기반 시스템은 비보호 좌회전이나 회전교차로 같은 복잡한 상황에서 지나치게 보수적이었다. 조금이라도 애매하면 멈춰 서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판단을 포기했다.


반면 최신 E2E AI는 수백만 대 차량이 수집한 실제 운전 데이터를 학습한다. 그리고 숙련된 운전자처럼 상대 차량의 의도를 읽고, 보행자의 움직임을 예측하며, 교차로에서 자연스럽게 진입 타이밍을 찾아낸다.


문제는 AI가 인간의 장점뿐 아니라 단점까지 함께 학습한다는 점이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좋은 시민은 좋은 법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의 운전자들은 항상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정지선 앞에서 완전히 멈추지 않는 롤링 스톱(Rolling Stop), 제한속도보다 약간 빠른 주행, 황색 신호에서의 무리한 통과 등은 전 세계 어느 도시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인간 운전자의 풍경이다.


E2E AI는 이러한 인간 행동 패턴을 통계적으로 학습한다. 결국 법규를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어떻게 운전하는가"를 학습하게 된다. 철학적으로 보면 AI는 법전을 읽는 판사가 아니라 군중을 관찰하는 사회학자에 가깝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법과 데이터가 충돌한다.


또 다른 문제는 설명 불가능성이다. 전통적인 자율주행 시스템에서는 차량이 특정 행동을 한 이유를 비교적 쉽게 추적할 수 있다. 카메라가 차선을 인식했고, 최적 경로를 계산했으며, 제어기가 그 명령을 수행했다. 반면 E2E 모델은 수십억 개의 파라미터가 하나의 신경망 내부에서 작동한다. 결과는 알 수 있지만 과정은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최근 일부 실증 사례에서 보고된 역주행 진입이나 비정상 차선 변경 현상도 이러한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정밀지도 의존도를 줄인 일부 E2E 시스템은 도로의 차선 정보보다 실시간 영상 정보를 활용한다. 이 과정에서 비정형 교차로나 훼손된 차선 환경에서는 AI가 실제 도로 구조를 잘못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


인간 운전자도 낯선 지역에서 길을 잘못 들어 역주행하는 경우가 있다. 차이는 인간은 자신의 실수를 설명할 수 있지만 AI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 AI의 조수석에 법관을 태워야 할지도


여기서 더욱 중요한 질문이 있다.


"AI가 사고를 냈다면 누구의 책임인가."


2026년 미국 법원이 테슬라 오토파일럿 관련 사건에서 제조사의 책임 일부를 인정한 판결은 하나의 교통사고 소송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법원이 처음으로 판단한 것은 차량의 운전 성능이 아니라 운전 알고리즘의 책임 범위였다.


앞으로 자율주행 시대의 핵심 쟁점은 자동차 제조사가 아니라 알고리즘 설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AI가 법규를 위반했을 때 책임은 운전자에게 있는가?


차량 제조사에 있는가?


아니면 데이터를 학습시킨 개발자에게 있는가? 기존 교통법 체계에서는 아직 이 질문에 완전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 업계는 새로운 절충안을 선택하고 있다. AI에게 운전을 맡기되 법률가는 내려놓지 않는 것이다.


이를 하이브리드 아키텍처라고 부른다. 상단에서는 E2E AI가 인간처럼 유연하게 판단하고, 하단에서는 독립된 안전 필터가 작동한다. AI가 적신호 통과를 시도하거나 중앙선을 넘으려 하면 안전 필터가 즉시 개입해 행동을 차단한다. 마치 천재적인 운전자의 옆자리에 원칙주의 판사가 함께 앉아 있는 구조다.


우리나라의 자율주행산업 역시 이러한 방향에 주목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창의성과 인간 사회의 규범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기술이야말로 레벨4 이후 시대의 핵심 경쟁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독일 철학자 칸트는 자유란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세운 규칙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의 자율주행차 역시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AI가 얼마나 인간처럼 운전하는가가 아니다. 인간보다 더 안전하게, 그리고 인간보다 더 성실하게 사회적 약속을 지킬 수 있는가이다.


자율주행 기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동차를 똑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수백 년 동안 쌓아온 법과 신뢰, 그리고 공동체의 질서를 기술 속에 이식하는 것이다. 그것이 대한민국 K-자율주행이 향해야 할 진정한 종착역일지 모른다.


정광복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KADIF) 단장


▲ 도시공학박사(연세대) ▲ 교통공학 전문가·스마트시티사업단 사무국장 역임 ▲ 연세대 강사·인천대 겸임교수 역임 ▲ 서울시 자율주행차시범운행지구 운영위원 ▲ 한국도로공사 고속도로자율주행 자문위원 ▲ 강릉 ITS 세계총회 조직위 위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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