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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전태수의 웹 3.0 이야기…코드가 신뢰가 되는 시대의 의미

입력 2026-05-28 09:3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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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스테이블 코인

[연합뉴스 그래픽 자료]



1990년대 후반의 인터넷은 정보를 '읽기'만 가능한 한 방향 공간이었다. 2000년대 들어 누구나 쓰고 공유할 수 있는 웹 2.0이 열리며 SNS와 플랫폼이 폭발했다. 그러나 자유의 대가는 컸다. 사용자가 만든 데이터와 콘텐츠는 모두 구글, 메타, 아마존 같은 거대 플랫폼의 서버에 쌓였고, 그 부가가치는 소수 기업이 독식했다.


이 구조에 균열을 낸 것이 바로 웹 3.0이다. 가트너는 웹 3.0을 '블록체인 기반의 탈중앙화된 웹'으로 정의한다. 사용자가 자신의 데이터, 자산, 신원에 대한 통제권을 직접 행사하는 새로운 인터넷이다. 그 정신의 핵심은 분명하다.


'중개자 없는 신뢰, 개인이 소유하는 가치'.


스테이블코인은 바로 이 웹 3.0 정신이 가장 또렷하게 구현된 통화 실험이다. 그저 새로운 디지털 결제 수단이 아니다. 은행 계좌, 환전소, 송금기관 같은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사람과 사람이 직접 가치를 주고받을 수 있게 한 코드 기반의 신뢰 체계다. 며칠 걸리던 국경 간 송금이 몇 분으로 단축됐고, 금융 인프라에서 소외됐던 수십억 명에게 '자기 지갑'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논의는 이 정신과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한국은행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은행 지분 51% 이상' 구조 안에 가두려 하고 있다. 발행은 은행이 맡고, 비은행은 유통과 활용 사례 발굴에만 참여하라는 식이다. "민간에 맡길 수 없다", "금융은 공공 인프라"라는 익숙한 논리가 다시 무대 위에 올랐다.


물론 안전성은 중요하다. 테라·루나 사태는 무담보 알고리즘 코인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똑똑히 보여줬다. 준비자산이 부실한 스테이블코인이 시스템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타당하다.


그러나 이 사고를 명분 삼아 디지털 화폐 전체를 다시 국가와 은행의 손에 쥐여주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것은 안전 강화가 아니라, 웹 3.0이 어렵게 열어 놓은 사용자 주권의 문을 도로 닫아거는 일이다.


웹 3.0의 통찰은 명확하다. 신뢰는 더 이상 거대 기관의 권위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누구나 검증할 수 있는 공개 원장, 위·변조가 거의 불가능한 블록체인, 코드로 자동 집행되는 스마트 컨트랙트가 새로운 신뢰의 기반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역설적으로 '신뢰받던 중개자'였던 은행이 어떻게 시스템 전체를 흔들 수 있는지 드러낸 사건이었다. 그 위기의 잿더미 위에서 비트코인 백서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은행 중심 모델이 자동으로 안전을 보장한다'는 가정도 다시 검증할 필요가 있다. 리먼브러더스 역시 은행이었고, 위기를 일으킨 주체는 결국 규제 안에 있던 거대 금융기관이었다. 반면 USDC, DAI 같은 주요 스테이블코인은 매월 준비금 내역을 온체인과 외부 감사로 공개하며, 누구나 발행량과 담보 상태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어느 쪽이 더 투명한가에 대한 답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진짜 위험한 것은 '분산' 자체가 아니다. 책임 소재가 불투명한 채로 권한만 한곳에 집중되는 구조다. 발행, 감독, 유통, 결제망이 같은 손에 쥐여 있을 때 위기는 더 크게 번진다. 웹 3.0이 제시한 답은 그래서 '중앙 통제 강화'가 아니라 '검증 가능한 분산'이었다.


해외 사례를 봐도 흐름은 다르다. 유럽연합의 가상자산시장규제법(MiCA) 아래에서 인가받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대부분이 전통 은행이 아니라 디지털자산 기업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일본도 자금결제법 개정을 통해 핀테크 주도의 엔화 스테이블코인 실험을 규제 틀 안에서 받아들이고 있다. 규제와 혁신이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한국이 진짜 고민해야 할 질문은 '누가 발행권을 독점할 것인가'가 아니다. '어떻게 다양한 발행자가 공정하게 경쟁하면서도 사용자 보호가 견고하게 작동하는 생태계를 설계할 것인가'다. 은행, 핀테크, 디지털자산 기업이 각자의 강점으로 경쟁하고, 그 위에 준비자산 공시·환매 보장·온체인 감사 같은 안전장치가 코드와 규제로 동시에 설계되는 모델이 진정한 웹3.0형 금융 인프라에 가깝다.


화폐 주권은 국가만의 것이 아니다. 자신의 돈을 어디에 보관하고, 어떻게 옮기며, 누구와 거래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 그것이 디지털 시대에 새로 정의되는 화폐 주권의 또 다른 얼굴이다. 웹3.0은 이 주권을 거대 기관에서 사용자의 지갑으로 되돌려놓자고 제안한다.


스테이블코인을 국가 통제 인프라로 묶어두는 길은 단기적으로 안전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한국을 글로벌 디지털 화폐 경쟁에서 '폐쇄적 후발주자'로 남게 만들 위험이 크다. 사용자가 떠난 디지털 화폐는 어떤 권위로도 되살릴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은행과 정부가 모든 것을 떠안는 구조가 아니다. 코드의 투명성과 사용자의 선택권을 신뢰의 토대로 삼는 새로운 금융 설계다. 웹3.0 시대의 화폐는 누가 통제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검증할 수 있느냐로 정의된다. 한국이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디지털 통화 질서의 주인은 결국 다른 누군가의 코드가 될 것이다.


전태수 웹 3.0·블록체인 전문가


▲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장 ▲ 한국인터넷미디어윤리위원회 이사장 ▲ 세계스타트업포럼 대표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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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8 11:00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