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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본인 제공]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초기 스타트업을 단기간에 집중 육성하는 민간 투자·코칭 기관)는 원래 행사 운영사가 아니었다. 출발점은 창업자의 시행착오를 압축해 주는 고도의 멘토십과 초기 투자였다.
2005년 미국에서 폴 그레이엄을 비롯한 창업자 출신 인사가 설립한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이하 YC)가 이 모델의 원형이다. YC는 아이디어 단계의 극초기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시드 액셀러레이터'(seed accelerator)로 분류된다. 소수의 초기기업을 직접 선발해 투자한 뒤 3개월 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서 선배 창업자와 투자자 네트워크에 집중적으로 연결하고, 마지막 날 '데모데이'를 통해 후속투자 시장으로 내보내는 방식을 정착시켰다.
지금까지 5천곳이 넘는 기업이 YC를 거쳐 갔다. 에어비앤비·스트라이프·드롭박스·레딧·오픈 AI 같은 회사도 모두 이 프로그램 출신이다.
2006년 미국 콜로라도주 볼더에서 출범한 '테크스타즈'(Techstars) 역시 비슷한 모델을 발전시켰다. 특히 '멘토 매드니스'(Mentor Madness, 직역하면 '멘토 광풍')라 불리는 집중 멘토링 과정으로 차별화했다. 프로그램 초반 3주 동안 창업팀이 20분 단위로 100명 안팎의 멘토를 연달아 만나 사업가설을 검증받는 방식이다. 짧은 시간 동안 선배 창업자·투자자·산업 전문가의 직설적인 피드백을 한꺼번에 받아내는 일이라 강도가 높고, 끝나면 창업팀에 5~6명의 핵심 멘토가 배정돼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일대일로 사업을 함께 끌고 간다. 핵심은 강의가 아니라 충돌이다.
사업가설을 흔들고, 고객을 다시 정의하고, 시장 진입 전략을 고치고, 투자자가 묻는 질문을 창업자가 몸으로 익히게 하는 과정이다.
이 모델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첫째, 액셀러레이터는 창업자보다 시장을 더 많이 경험한 사람들을 연결한다. 둘째, 말뿐인 조언이 아니라 소액이라도 직접 투자해 이해관계를 맞춘다. 셋째, 프로그램의 끝은 수료식이 아니라 고객·파트너·후속 투자자와의 연결이다. 그래서 액셀러레이션은 교육이라기보다 초기기업이 사업의 기본 예방접종을 맞는 과정에 가깝다. 제대로 맞으면 치명적 시행착오를 줄이고, 잘못 맞으면 이름표와 기념사진만 남는다.
한국에도 이 문제의식은 일찍이 있었다. 2010년 권도균(이니시스 창업자)·이택경·이재웅(다음 공동창업자)·장병규(네오위즈·블루홀 창업자) 등 1세대 인터넷 창업자들이 후배 창업자에게 자기 경험을 환원하겠다며 '프라이머'(Primer)를 세운 것이 출발점이다. 이후 이택경 대표가 독립해 '매쉬업엔젤스'(Mashup Angels)를 차렸고, 2012년 인텔에 인수된 올라웍스의 창업자 류중희는 '퓨처플레이'(FuturePlay)를 설립했다. 모두 민간 주도로 시작된 1세대 액셀러레이터다. 제도적으로는 2016년 '창업기획자 등록제도'(스타트업을 발굴·투자·지원하는 민간기관을 중소벤처기업부에 등록해 관리하는 제도)가 도입됐다.
산업은 빠르게 성장해, 벤처 투자 종합 포털 기준 2025년 12월 창업기획자는 501개 사에 이르렀다. 양적으로는 산업이 커진 셈이다. 그러나 이제 질문은 숫자가 아니라 본질이다. 우리는 정말 500개의 액셀러레이터를 갖게 된 것인가, 아니면 500개의 창업 지원사업 수행기관을 갖게 된 것인가.
현장의 구조는 냉정하다. 한국 액셀러레이터 산업의 상당 부분은 민간 창업자가 돈을 내고 좋은 육성 서비스를 구매하는 시장이 아니라, 정부·지자체·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용역시장 위에 서 있다. 즉 발주처(예산을 편성해 사업을 외부에 위탁하는 정부·지자체·공공기관)가 예산을 만들고, 운영사가 제안서를 내고, 선정되면 모집·교육·멘토링·데모데이를 수행하는 식이다.
이 구조에서 진짜 고객은 스타트업이 아니라 발주처가 되기 쉽다. 성과지표도 창업자의 실제 성장보다 투자유치 건수, 투자금액, 멘토링 횟수, 멘토 연결 수, 행사 횟수, 만족도 설문에 맞춰진다. 그러다 보니 액셀러레이션은 창업자의 사업을 깊이 바꾸는 과정이 아니라, 정해진 항목을 빠짐없이 처리하는 행정 운영으로 변질된다.
특히 멘토링의 왜곡은 심각하다. 좋은 멘토링은 창업자의 산업·고객·기술·수익모델을 이해한 사람이 시간을 들여 사업의 핵심을 파고드는 일이다. 그러나 많은 공공 프로그램에서 멘토링은 '몇 회 상담했는가'로 평가된다. 그러다 보니 멘토링은 액셀러레이터 내부의 핵심역량으로 축적되기보다, 정해진 횟수를 채우기 위해 외부 멘토에게 배정되는 물량이 되기 쉽다. 한 명의 멘토가 수십 개 기업을 짧은 시간 안에 만나고, 기업별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비슷한 조언을 반복한다. 창업자는 자신의 문제를 끝까지 붙잡아 주는 책임 있는 조력자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실적표의 한 칸을 채우는 상담 대상이 된다. 이것은 테크스타즈의 멘토 매드니스처럼 충돌과 검증이 응축된 멘토십이 아니라, 횟수만 채워지는 공장식 육성이다.
투자 역시 본질에서 멀어질 때가 있다. 액셀러레이터의 투자는 원래 기관이 자기 안목과 책임으로 창업자를 고르는 행위여야 한다. 그런데 일부 공공 프로그램에서는 이미 프로그램에 선발된 기업에 대해 운영사가 사실상 정해진 절차처럼 투자하는 구조가 생긴다. 이는 투자자의 선별 책임을 약화하고, 액셀러레이터를 위험을 판단하는 투자자가 아니라 프로그램 요건을 이행하는 집행자로 만들 수 있다. 초기투자는 금액보다 판단이 중요하다.
누가 왜 이 팀을 선택했는지, 어떤 가설에 베팅했는지, 투자 이후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가 분명해야 한다. 프로그램 연계 투자가 필요하더라도 운영사의 독립적 투자 판단과 사후 지원 책임은 더 엄격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그 결과 액셀러레이터의 대표는 창업자를 만나는 사람이라기보다 펀드 조성·발주처 영업·용역 제안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된다. 스타트업 대표가 실제로 만나는 사람은 업계 경험이 깊은 파트너가 아니라 저연차 운영인력인 경우가 많다. 멘토링도 내재화된 전문성보다 외부 섭외 명단에 의존한다. 시장에는 '생계형 멘토'가 늘고, 이제는 멘토링을 다시 공급하는 전문 하청업체까지 등장했다. 겉으로는 액셀러레이션 프로그램이 많아졌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창업자의 사업모델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고통스러운 1대1 멘토십은 오히려 희소해졌다.
좋은 액셀러레이터를 판단하는 가장 간단한 기준은 있다. 그 기관의 최고 멘토, 핵심 파트너, 최종 책임자가 실제로 창업자를 만나고 있는가. 창업자가 대표나 파트너와 정기적으로 사업을 논의할 수 있는가. 그들이 창업자의 고객 전략, 가격 정책, 채용, 투자유치, 그리고 피벗(pivot·기존 사업모델·고객·제품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결정)에 직접 개입하고 있는가.
액셀러레이터의 수준은 브로슈어에 적힌 멘토 명단이 아니라, 가장 경험 많은 사람이 실제로 창업자에게 쓰는 시간에서 드러난다.
더 큰 문제는 민간 시장의 소멸이다. 정부가 무료 액셀러레이션을 대량 공급하면 창업자는 돈을 내고 좋은 육성을 구매할 이유를 잃는다. 대기업은 초기에는 전문 액셀러레이터와 협업하지만, 방법론과 네트워크를 익히면 직접 운영하려 한다. 결국 중소형 전문 액셀러레이터는 생존을 위해 공공사업 수주 경쟁으로 밀려나고, 섹터별 전문성을 축적할 시간과 재원을 잃는다. 산업은 커졌지만, 업의 본질은 작아지는 역설이 생긴다.
물론 공공 창업지원이 모두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초기 생태계가 얇은 나라에서 공공 재정은 중요한 마중물이었다. 다만 마중물이 시장 전체를 덮어버리면 물길은 생기지 않는다. 공공사업은 민간 전문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설계돼야지, 전문기관을 단순 운영대행사로 소모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액셀러레이터가 스스로 판단해 투자하고, 장기간 포트폴리오를 책임지고, 성과와 실패를 함께 기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의 평가도 바뀌어야 한다. 몇 개사를 교육했는지, 몇 건의 투자를 연결했는지가 아니라, 몇 개사의 사업가설이 검증됐는지, 얼마나 다양한 전문가를 만났는지, 어떤 고객과 연결됐는지, 후속 투자가 돼 일어났는지, 창업자가 프로그램 이후에도 다시 찾아오는지가 중요하다.
창업생태계에서 가장 비싼 자원은 예산이 아니라 좋은 사람의 시간이다. 이미 창업해 본 사람, 실패를 겪어 본 사람, 고객을 뚫어 본 사람, 투자심사를 해 본 사람이 초기 창업자에게 집중적으로 시간을 쓰는 구조가 사라지면 액셀러레이션은 껍데기만 남는다. 그래서 이 산업의 경쟁력은 사무국 규모가 아니라 파트너의 밀도, 멘토의 질, 네트워크의 진정성에서 나온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더 진한 액셀러레이션이다. 초기기업은 서류와 발표를 잘하는 법보다 시장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운영 매뉴얼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선배 창업자의 경험, 투자자의 질문, 산업 전문가의 네트워크, 그리고 실제 투자책임이 결합될 때 가능하다. 액셀러레이터가 다시 창업자의 곁으로 돌아와야 한다.
결국 액셀러레이터의 성패는 스타트업을 얼마나 많이 통과시켰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깊게 바꾸었느냐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래야 창업 지원사업은 행정이 아니라 성장의 인프라가 되고, 초기기업은 첫 번째 위험한 계절을 통과할 힘을 얻는다.
이순열 공익법인 임팩트투자 NGO 큐네스티 대표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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