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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바다는 고요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수많은 생명이 순환하며 끊임없이 흐른다. 그 흐름 속에서 태어나 한 자리에 붙어 살아가는 존재가 있다. 바로 멍게다. 사람들은 그 독특한 향 때문에 호불호가 갈린다고 말하지만, 멍게는 바다의 기운을 가장 농축해 담아낸 식재료다. 입에 넣는 순간 퍼지는 짭짤함과 쌉쌀함, 그리고 뒤따르는 은은한 단맛은 자연의 순환을 그대로 보여주는 맛의 흐름이다.
◇ 멍게의 영양학
양생에서 음식은 영양을 보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몸의 기(氣)를 다스리는 역할을 한다. 멍게는 성질이 차고(寒), 맛은 달고 시며(甘酸), 간과 신장으로 들어간다. 몸속의 열을 식히고 부족한 음(陰)을 보충하는 작용을 한다는 의미다. 현대인은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몸속 열이 쉽게 쌓이고 진액이 부족해진다. 이때 멍게는 바다의 차가운 기운으로 몸의 균형을 맞춰준다.
특히 멍게의 보음 작용은 중요하다. 음이 부족해지면 몸이 쉽게 피로해지고 얼굴이 붉어지거나 입이 마르는 증상이 나타난다. 멍게는 이러한 상태를 완화하고 체내 진액을 보충해준다. 또한 간과 신장을 보하는 작용은 생명력과도 연결된다. 도교 양생에서는 신장을 '생명의 뿌리'라고 했는데, 멍게는 이 뿌리를 보강하는 음식으로 여겨졌다.
현대 영양학적으로 보아도 멍게는 흥미로운 식재료다. 100g당 약 78㎉로 열량이 낮고 단백질은 풍부하며 지방은 적다. 특히 타우린과 글리코겐이 풍부해 피로 해소에 도움을 준다. 타우린은 간 기능을 도와 해독 작용을 촉진하고, 글리코겐은 빠르게 에너지원으로 전환돼 몸의 활력을 높인다. 예로부터 바닷가 사람들은 멍게를 먹고 나면 몸이 가벼워진다고 말했다.
또한 멍게에는 바나듐이라는 미량 원소가 들어 있다. 이 성분은 인슐린 작용을 도와 혈당 조절에 도움을 준다. 당뇨와 같은 현대 질환 예방에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더해 EPA 같은 불포화지방산은 혈관을 깨끗하게 한다. 또한,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만들어 심혈관 질환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최근 주목받는 성분 중 하나는 플라스마로겐이다. 이는 뇌세포 막을 구성하는 중요한 물질로, 신경 기능을 보호해 치매 예방에 도움을 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 연구 단계이지만 전통적으로 멍게를 먹으면 머리가 맑아진다고 했던 경험과도 맞닿아 있다. 옛사람의 경험이 과학으로 조금씩 설명되고 있는 셈이다.
멍게의 또 다른 특징은 강한 항산화 작용이다. 멍게에 포함된 다양한 생리활성 물질은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염증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노화 방지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피부가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 역시 실제 생리적 변화와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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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식문화에서 멍게는 오랫동안 곁들임 음식으로 자리해왔다. 회를 기다리는 동안 나오는 작은 한 접시였지만 그 안에는 바다의 정수가 담겨 있었다. 이후 통영 지역에서 멍게비빔밥이 등장하면서 멍게는 밥상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밥 위에 올려진 멍게와 채소, 김, 참기름이 어우러질 때 오색의 조화와 함께 음양의 균형이 완성된다. 자연과 인간이 한 그릇 안에서 만나는 셈이다.
도교에서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삶을 최고의 양생으로 본다. 멍게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흐르는 물속에서 필요한 것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기관은 버리고 에너지를 아껴 생존에 집중한다. 이 모습은 인간에게도 교훈을 준다. 불필요한 욕심을 줄이고 필요한 것만 취하는 삶이 건강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멍게를 먹는 방법 또한 중요하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신선한 멍게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이다. 이때 매콤한 맛은 차가운 성질을 보완해 소화를 돕는다. 채소와 함께 비빔밥으로 먹으면 기의 흐름도 더욱 부드러워진다. 다만 성질이 차기 때문에 몸이 냉한 사람은 과다 섭취를 피해야 하며 하루 5~6개 정도가 적당하다.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멍게의 향이다. 많은 사람이 이 향을 '바다 냄새'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멍게의 향은 바다 환경을 반영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깨끗한 바다에서 자란 멍게일수록 향이 맑고 깊다.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는 어떤 환경을 선택하는지와도 연결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멍게는 해산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 안에는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지혜, 인간의 건강이 함께 담겨 있다. 도교 양생에서는 좋은 음식은 몸을 살리고 바른 음식은 삶을 바꾼다고 했다. 멍게 한 점 속에 담긴 바다의 기운을 느끼며 사람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게 된다.
결국 양생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계절에 맞는 음식을 먹고 자연의 흐름을 따르는 일이다. 초여름 바다에서 가장 맛이 오르는 멍게는 그 자체로 계절의 메시지다. 지금 이 순간 우리 몸에 필요한 기운이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자연이 주는 답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건강의 시작이다.
◇ 손자병법으로 바라본 멍게 요리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병력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지형을 아는 것이다. 손자병법에 보면 "지형(地形)은 땅의 높고 낮음을 의미하는데, 이를 통해 험함과 평탄함을 알면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전쟁의 원칙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자연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바다의 지형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존재가 멍게다. 멍게는 떠다니지 않는다. 움직이지도 않는다. 흐르는 물결과 바위의 형세를 읽고 그 자리에 붙어 자신의 삶을 완성한다. 지형을 읽어 스스로를 낮추고 자리를 지키는 병법의 고수와 닮았다.
도교에서는 이를 무위(無爲)라고 한다. 억지로 움직이지 않고 자연에 맡기는 것이다. 멍게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가장 깊은 흐름을 얻는다. 물이 흐르는 방향을 거스르지 않고 그 흐름 속에서 필요한 영양을 받아들인다. 인간 역시 삶의 지형을 거스르지 않을 때 비로소 건강과 평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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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게를 회로 먹는 것은 이 '지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칼로 껍질을 열고 바다의 향을 그대로 입에 넣는 순간 사람은 가공되지 않은 자연과 만난다. 쌉쌀함과 단맛, 그리고 바다의 기운이 함께 어우러진다. 입안에서 펼쳐지는 복합적인 맛은 몸의 감각을 깨우고 정체된 기를 움직인다.
비빔밥은 또 다른 지형이다. 밥이라는 평지 위에 멍게와 채소가 어우러진다. 각기 다른 색과 맛이 섞이며 하나의 조화를 이룬다. 평지에서 군대를 운용하는 것처럼 각자의 역할이 분명하면서도 서로를 해치지 않는다. 몸 안에서는 음과 양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며 균형을 이룬다.
젓갈은 시간이라는 지형을 통과한 음식이다. 소금에 절여 발효되는 과정에서 멍게는 더욱 깊은 맛을 얻는다. 좁고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불필요한 것은 사라지고 본질만 남는다. 발효된 멍게는 장을 따뜻하게 하고 소화를 돕는다. 발효의 힘으로 몸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산적은 불의 지형이다. 멍게를 살짝 익혀 꼬치에 꿰어 먹으면 생것과는 또 다른 깊이가 드러난다. 불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익힘을 통해 차가운 성질이 완화되고 소화가 약한 사람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찜과 국은 물의 지형이다. 멍게를 넣어 끓인 국물은 바다의 깊은 맛을 그대로 담아낸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며 모든 것을 포용한다. 피로가 풀리고 막혀 있던 기운이 부드럽게 흐른다. 보이지 않는 곳이 안정돼야 전체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쟁의 후방과도 닮았다.
노자는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고 했다. 물은 다투지 않으며 낮은 곳에 머문다. 멍게의 삶은 이 말의 구현이다. 스스로를 낮추고 흐름에 맡기며 가장 깊은 맛을 만들어낸다. 인간이 멍게를 먹는다는 것은 이 철학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 또한 하나의 지형이다. 때로는 험하고 때로는 평탄하다. 중요한 것은 그 지형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멍게처럼 자신의 자리를 알고 흐름을 따르는 것, 그것이 건강을 지키는 길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조용하지만 깊게 삶에 스며들어 몸의 균형과 시간을 바꿔놓는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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