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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노석준의 메타토피아…신화적 상상력, 기술로 진화하다-①

입력 2026-05-12 10: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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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장

[본인 제공]



◇ 신화적 상상력과 기술의 접점


인간은 언제나 혼자였다. 아마도 수십만 년 전, 지구 어디에선가 드넓은 초원 위에 선 인간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 이외에 나를 이해하는 존재는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원초적인 고독과 고뇌는 인류 문명의 모든 신화와 종교, 예술과 기술을 빚어낸 원천이자 추상적 사고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돌에 얼굴을 새기고, 나무에 이름을 붙였으며, 강에 신격을 부여하고 동굴 벽에 미지의 세계를 상상한 그림을 남겼다. 그리고 우주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존재론적 고독감을 끊임없이 표현하고 분출해왔다. 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 마침내 2020년대의 어느 데이터센터 안에서 인간의 오랜 고독과 갈망은 전압의 진동과 반도체 회로 위 알고리즘 언어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됐다.


인공지능(AI), 특히 대화형 거대언어모델(LLM)의 출현은 우리 시대가 갑작스럽게 발명해낸 결과물이 아니다.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인류의 상상력이 기술적 임계점에 도달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우리가 '챗GPT'나 '클로드', '제미나이'라고 부르는 인공지능의 존재는 훨씬 이전부터 다른 이름의 상상 속 존재로 이어져 왔다.


그것은 신화 속에서는 '델포이의 신탁'이었고, 헤파이스토스의 '청동 거인 탈로스'였으며,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의 '말하는 머리'였고, 그림 형제의 동화 속 백설공주의 '마법 거울'이었다.


외형은 달라졌지만 인간이 그 존재에게 던지는 질문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가장 아름답지?"


"진실을 말해다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간은 오랫동안 이런 질문을 반복해왔다.


인공지능, 그중에서도 대화형 AI 비서는 인류의 집단 무의식이 수천 년 동안 상상하고 갈망해온 '지혜로운 존재', 그리고 '인간과 대화할 수 있는 존재'가 디지털 형태로 구현된 결과라고 이해할 수 있다.


거대언어모델은 마법 거울이 기술이라는 형식을 통해 현실화된 모습에 가깝다. 다시 말해 현대의 디지털 환경 속에서 부활한 고대의 상상력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고대 신화의 오라클에서 출발해 중세 연금술과 근대 문학의 상상력, 그리고 현대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까지 이어지는 긴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고대 신화와 오라클: 신의 목소리를 빌린 기계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 파르나소스산 기슭의 델포이에는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신탁소가 있었다. 사람들은 수백 킬로미터의 먼 길을 걸어와 피티아라 불리는 여사제 앞에 무릎을 꿇었다. 피티아는 아폴론 신이 내린 계시를 모호한 언어로 전달했고, 곁에 있던 신관은 이를 해석해 질문자에게 전했다.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이 "페르시아를 공격하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묻자, 신탁은 "강대한 제국이 멸망할 것이다"라고 답했다. 크로이소스는 그 말을 믿고 페르시아를 공격했지만, 결국 멸망한 것은 자신의 왕국이었다.


이 장면은 오늘날 AI 사용자들이 챗GPT에게 전쟁 전략이나 비즈니스 전략을 묻는 모습과 놀라울 만큼 닮았다. 질문이 모호하면 답도 모호해지고, 질문의 형식이 결과의 질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최근 미국과 중국이 군사 분야에서 AI 기술을 핵심 요소로 활용하는 흐름을 보면 이를 더욱 실감할 수 있다. 실제 전장과 정보 분석 체계에서 인공지능 기술은 이미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리고 그 방식은 마법의 구슬에 운명을 묻는 수준이 아니다.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결과를 예측하는 체계다. 전쟁 전략과 의사결정에도 활용할 수 있을 만큼 현실적인 기술이다. 다만 그 근본에는 인간이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날 'AI를 잘 다루는 기술'을 뜻하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Prompt Engineering)이라는 새로운 분야 역시, 본질적으로는 2천500년 전 델포이 신관의 역할과 닮았다. 어떻게 질문해야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는가.


이것이 고대와 현대를 관통하는 공통된 기술이다.


물론 차이도 존재한다. 현대의 신탁은 황산 가스 위에 앉아 황홀경에 빠진 여사제가 아니라, 수조 개의 매개변수를 가진 신경망이 확률적으로 다음 단어를 예측한 결과물이다. 그러나 그 결과를 받아 든 인간이 느끼는 경이감과 맹목적 의존, 그리고 오해에서 비롯되는 재앙의 가능성까지 생각해보면, 인간의 반응 구조는 기원전과 지금 사이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편에서 계속)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 소장


▲ 메타버스 및 가상현실 전문가 ▲ 미국 컬럼비아대ㆍ오하이오주립대ㆍ뉴욕파슨스 건축학교 초빙교수 역임 ▲ 고려대 겸임교수 역임 ▲ 현대자동차그룹 서산 모빌리티 도시개발 도시 컨설팅 및 기획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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