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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노조에 '상생'과 '연대'를 묻다
(서울=연합뉴스) 윤선희 선임기자 = # 청년 전태일은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 앞길에서 근로기준법 책을 품에 안은 채 분신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는 외침과 함께. 이후 수많은 이들이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전태일의 후예들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 나섰고, 노동권 보장과 차별 철폐, 인권 개선을 외치며 사회적 약자들을 껴안고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 노동절이 63년 만에 명칭이 복원돼 법정공휴일로 지정됐다. 서울 도심 곳곳에서 1만명 안팎의 노동자들이 대규모 집회에 나섰다. 민주노총은 "1천만명이 넘는 기간제, 특수고용·플랫폼, 하청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헌법의 노동삼권과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며 투쟁을 예고했다. 우리나라 비정규직은 1천만여명에 달한다. 연봉 3천만원가량을 받고 2년마다 반복 해고된다.
# 삼성전자 노조가 회사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달라며 이달 총파업을 예고했다. 삼성전자는 1분기 영업이익이 57조2천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올해 전체로는 300조원을 훌쩍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노조 요구대로 전체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면 총 45조원, 반도체 부문 직원 1인당 6억원가량의 '역대급' 성과급이 주어진다.

(평택=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의 '투명하게 바꾸고, 상한폐지 실현하자-4/23 투쟁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4.23 [공동취재] xanadu@yna.co.kr
헌법상 파업권 등 노동삼권은 보장돼야 할 권리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성과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도 지극히 당연하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문제는 삼성전자 실적에는 정규직뿐 아니라, 수많은 중소 협력사 노동자들의 땀과 노력도 녹아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 정규직 임직원의 평균 연봉은 1억원을 훌쩍 넘지만, 많은 중소 협력사 임직원들의 연봉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친다. 삼성전자의 역대 최고 실적을 만드는 데 기여한 협력사 임직원들이 그 성과 배분에서 철저히 소외됐다는 얘기다.
현재 반도체 산업은 초호황이지만, 국내의 많은 기업이 불황과 중국의 공습 등으로 구조조정에 직면해있다.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걱정하고,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협받기도 한다. 희망퇴직에 내몰리고 무급휴직에 내몰리는 많은 노동자들이 삼성전자 직원들의 막대한 성과급을 보고 과연 무엇을 느낄까. 여론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7명이 삼성전자 노조 파업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자칫 사회적 연대를 해치고 극심한 위화감과 박탈감만 조성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삼성전자 노조가 사회적 지지를 얻으려면 주변을 껴안는 모습을 먼저 보여야 한다. 10여년 전 SK하이닉스 노사는 임금 인상분의 일부를 협력사 직원들의 복지와 임금 보전으로 돌리는 '상생협력 임금 공유제'를 시행해 눈길을 끌었다. 나만 잘사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가 잘 사는 것'이 돼야 1등 기업의 노조는 이기주의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 건강한 생태계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초일류 기업의 위상과 미래를 지킬 수 있다.
전태일 열사는 본인도 가난 속에 어렵게 살았지만, 점심을 거르는 10대 시다(미싱사와 재단사 보조)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자신은 차비가 없어 2∼3시간 걸어서 퇴근했다. 수십년 '무노조 경영' 기조를 무너뜨리고 2018년 삼성전자에 첫 노조를 설립할 수 있었던 것도 전태일 열사를 비롯한 노동운동, 민주화운동 선배들의 희생과 연대 의식이 열매를 맺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선배들의 외침에 귀를 닫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삼성전자 노조가 스스로 물어야 할 때이다.
indig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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