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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본인 제공]
한국의 임팩트투자 생태계가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회문제가 작아서도, 창업자가 부족해서도 아니다. 기후 위기, 지역소멸, 장애 돌봄, 의료 접근성, 교육격차처럼 투자로 풀어야 할 과제는 오히려 빠르게 커지고 있다.
문제는 자금의 성격이다. 북미와 유럽에서는 대형 재단과 자선 자본이 임팩트투자의 초기 시장을 만드는 데 핵심 역할을 해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재단이 사회적 임팩트투자 시장의 인프라를 만들고, 촉매 자본을 공급하며, 직접 투자자로 참여해 왔다고 분석한다.
포드 재단은 2017년 미션투자 프로그램을 출범시키고, 보조금뿐 아니라 프로그램 관련 투자와 미션 관련 투자를 통해 자본주의가 사람을 위해 작동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Mission Investors Exchange'도 2005년 포드 재단, 맥아더 재단 등 주요 재단들이 "자본을 임팩트에 사용하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며 출범한 네트워크다.
반면 한국의 자선 자본은 아직 투자시장으로 거의 흐르지 못한다. 문제는 법·제도상 자선 자본이 '투자자'가 되기 어렵게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공익법인은 출연재산을 공익목적사업에 직접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운용되며, 기본재산을 주식·채권·펀드 출자금 등 투자성 자산으로 전환하려면 주무관청의 허가와 정관상 목적 부합성이 필요하다.
특히 스타트업 지분투자처럼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행위는 안정적 재산 보전이라는 감독 원칙과 충돌하기 쉽다. 세법상으로도 공익법인이 내국법인 주식 또는 출자지분을 일정 비율 이상 취득·보유하면 증여세 과세, 의무 지출, 초과 보유 제한 등 부담이 발생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역시 법상 핵심 기능이 모금 재원의 '배분'에 맞춰져 있어, 임팩트펀드 출자나 비상장 혁신기업 투자처럼 회수·재투자를 전제로 한 자본 공급 방식은 제도적으로 운용하기 어렵다. 선의의 돈이 투기적으로 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라는 취지는 이해된다. 그러나 그 결과 재단과 모금기관이 북미·유럽의 재단처럼 임팩트펀드에 출자하거나 초기 혁신기업에 장기 인내 자본을 공급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한국의 임팩트투자는 정부 모태펀드에 과도하게 의존한다. 2024년 모태펀드 1차 정시 출자사업에서 '임팩트' 분야 출자 예산은 200억 원이었다. 물론 귀한 자금이다. 그러나 국내 주요 기업 219개 사가 2023년에 지출한 사회공헌비가 3조5천191억 원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 사회 안에는 이미 훨씬 큰 자선 자본이 존재한다. 2024년 주요 기업 325개 사의 사회공헌비는 5조3천843억 원으로 더 커졌다. 이 돈의 아주 작은 일부만 흐름을 바꿔도 임팩트투자 생태계는 달라질 수 있다.
그동안 사회공헌 기부금은 결식아동 지원, 취약계층 생계지원, 연탄 나눔, 김장 지원처럼 당장의 고통을 덜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것은 여전히 필요하다. 다만 이제는 질문을 하나 더해야 한다. 사회문제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막는 데 그칠 것인가, 아니면 문제 해결 구조 자체를 바꾸는 기술과 비즈니스에도 자선 자본을 투입할 것인가. 지원은 오늘의 결핍을 메우지만, 투자는 내일의 해결 방식을 키운다. 두 방식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역할이 다르다.
예컨대 절단 장애인이 평생 보조금의 수급자로만 남지 않고, AI 근전도 신호 기술을 통해 의수를 자기 손처럼 쓰며 일상과 노동으로 복귀하도록 돕는 '유니스제이'가 있다. 청각장애인이 회의실, 병원, 공공기관, 학교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AI 수어 동시통역기로 주류사회 편입을 돕는 '바토너스'도 있다. 이송 중 응급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달구' 같은 기업도 있다. 이런 기업은 대개 초기 기술개발과 사업화 사이의 '데스밸리'에서 가장 큰 위험을 만난다. 시장은 아직 작아 보이고, 매출은 충분하지 않으며, 민간 벤처캐피털(VC)은 더 빠른 성장과 회수를 요구한다.
바로 그때 필요한 자본이 촉매 자본이고 인내 자본이다. 임팩트기업에 대한 초기 투자는 그저 한 회사를 돕는 일이 아니다. 장애인의 사회복귀 비용을 낮추고, 소수자의 의사소통 장벽을 줄이며, 응급의료 체계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사회 인프라를 만드는 일이다.
기업 사회공헌 기금과 기부금이 공익법인형 임팩트투자사에 직접 기탁돼 초기 임팩트기업 투자에 사용된다면, 그 돈은 한 번 쓰이고 사라지는 비용이 아니라 반복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자본이 될 수 있다. 투자금은 기업의 성장과 함께 다시 회수되어 다음 기업에 재투입될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시장이 외면한 문제에 대한 실험과 학습을 남긴다.
물론 모든 기부금이 투자로 바뀌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재난, 빈곤, 돌봄, 긴급 지원에는 여전히 무상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매년 수조 원의 사회공헌 재원 중 1%라도 혁신적 사회문제 해결 기업에 투입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3조 원의 1%는 300억 원이다. 이는 한 해 임팩트 모태펀드 출자 예산을 넘어서는 규모다. 기부금은 선의의 종착지가 아니라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한국 임팩트투자 시장의 병목은 아이디어 부족도, 창업자 부족도 아니다.
위험을 먼저 감수해 줄 자본의 부족이다. 이제 사회공헌도 '얼마를 썼는가'에서 '무엇을 바꾸었는가'로 이동해야 한다. 매년 수조 원의 기부금이 문제를 완화하는 돈을 넘어, 사람을 사회로 복귀시키고 생명을 살리며 지역과 기후의 미래를 바꾸는 투자로 흐를 때, 한국의 임팩트투자는 비로소 불모지를 벗어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전환이 기업 사회공헌의 본질을 약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기업이 잘 아는 방식, 즉 문제를 정의하고 자원을 배분하며 성과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사회공헌을 고도화하는 일이다. 기부금이 임팩트투자사에 기탁돼 공익목적 투자로 집행되면 기업은 단순 후원자가 아니라 사회문제 해결 시장을 여는 앵커가 된다.
공익법인형 임팩트투자사는 기부자의 선의를 창업자의 실행력과 연결하고, 투자 이후에는 임팩트 지표와 재무성과를 함께 관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기부와 투자의 중간 지대, 한국에 가장 필요한 '블렌디드 파이낸스'의 출발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대한 제도개혁만이 아니다.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가 연간 예산의 일부를 혁신기업 투자 재원으로 설계하고, 기부처가 이를 목적사업으로 수용하며, 공익법인형 투자기관이 엄격한 심사와 사후관리를 수행하는 작지만, 구체적인 실험이다.
법과 세제의 장벽은 단계적으로 풀어야 하지만, 가능한 경로부터 열어야 한다. 이미 매년 수조 원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쓰이고 있다면, 이제는 그 돈이 더 오래, 더 깊게, 더 구조적으로 일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임팩트투자는 자선의 반대가 아니라 자선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한 방식이다.
선의가 시장을 만나면 변화는 더 빨라질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선언이 아니라 돈의 흐름을 바꾸는 실행이다. 이것이 한국형 임팩트투자의 다음 단계다.
이순열 공익법인 임팩트투자 NGO 큐네스티 대표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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