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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본인 제공]
지난 칼럼에서 명품 브랜드 광고에서 인공지능(AI)이 쓰인 현실과 반작용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렇다고 AI가 럭셔리 브랜드 캠페인에서 항상 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 AI는 비용 절감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관 제작 방식이 될 수도 있다.
관건은 AI가 브랜드의 희소성, 장인성, 권위를 약화하는 방향으로 보이느냐, 혹은 그것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설계되느냐에 있다. 전면 합성으로 시간을 지워버리는 대신, 아카이브(Archive)와 상징을 재해석하는 장치로 쓰고, 결과물보다 선택의 기준을 전면에 세우는 것이다. 즉, 인간의 개입이 남는 구간을 명확히 확보하며, 물성 단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구찌 엑스(X) 계정 캡처]
럭셔리 브랜드에서 AI가 사람의 공정을 대체해 제작비를 줄이려는 수단으로 읽히는 순간 역풍은 즉각 시작된다. 반대로 AI가 브랜드의 시간과 선택을 더 정교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쓰일 때, 논쟁은 반발이 아니라 새로운 권위의 실험으로 바뀔 수 있다.
맥도날드와 코카콜라의 연말 광고는 다른 방향에서 같은 문제를 드러낸다. 연말 광고는 거의 장르 자체가 하나의 계약처럼 기능한다. 이 시기의 광고는 상품을 설명하기보다 따뜻함, 위로, 가족, 공동체, 향수 같은 감정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는다. 관객은 광고를 보기 전부터 이미 그 감정의 온도를 기대한다.
그래서 연말 광고에서 AI가 거슬리는 이유는 단지 화면에서 합성의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 아니다. 정서의 결이 장르의 기대와 어긋나는 순간, 관객은 기술을 평가하기 전에 브랜드의 태도를 먼저 평가한다.
코카콜라는 연말 광고가 일종의 의식처럼 굳어진 브랜드다. 많은 사람에게 연말의 코카콜라 광고는 특정 비주얼과 음악, 특정한 리듬으로 기억되는 정서적 루틴에 가깝다. 이런 브랜드가 AI로 그 장면을 재현했을 때 관객이 예민해지는 지점은 완성도가 아니라 진정성의 근거다.
익숙해야 할 장면이 낯설게 느껴지거나 따뜻해야 할 표정이 비어 보이거나 물성이 있어야 할 순간이 평평해지는 순간, 관객은 연말의 온기를 만드는 대신 연말의 온기를 모사하는 쪽을 택했다고 해석한다. 즉, 연말의 감정 노동을 제작 기술로 대체했다는 인상이 생기는 것이다.
맥도날드도 같은 함정에 걸린다. 연말의 혼란과 피로를 풍자하는 접근 자체는 가능하다. 문제는 그 풍자가 관객이 받아들일 만한 유머의 온도에 머물지 못하고, 냉소로 읽히는 순간이다. 연말 광고에서 관객은 휴식이나 위로를 기대하는데, 메시지가 그 기대를 비껴가면 화면의 어색함은 곧바로 진정성이 빠진 메시지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AI의 매끈한 표면과 균질한 표현은 감정의 온도를 더 낮추는 쪽으로 작동하기 쉽다. 결과적으로 비판은 AI가 이상하다는 말로 표면화되지만, 뿌리는 연말에 이 브랜드가 해야 할 역할을 생략했다는 인상이다. 감정 기반 광고에서 AI는 효율의 상징으로 읽히는 순간 가장 빠르게 무너진다.
두 사례를 함께 놓고 보면 공통점이 더 선명해진다. 연말 광고에서 브랜드가 파는 것은 영상의 정교함이 아니라 관계의 온도다. 그런데 AI가 전면에 나서는 순간, 관객은 광고를 감상하기보다 제작 방식을 점검하는 모드로 들어간다. 그때 브랜드가 남겨야 할 것은 완벽한 표면이 아니라 사람의 손길이 만든 정서적 증거다.
연말이라는 '장르'에서는 특히 그렇다. 매끈함이 늘어날수록, 관객은 오히려 따뜻함의 '증거'를 더 집요하게 찾는다.
그 흐름은 미국 슈퍼볼 광고에서 한 단계 더 구조적으로 드러났다. 슈퍼볼은 미국 프로풋볼 결승전이지만, 광고 관점에서는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하나의 국민적 미디어 축제에 가깝다. 시청자가 압도적으로 많고, 광고 단가가 매우 높으며, 여러 브랜드가 1년 중 가장 큰 무대에 가장 큰 예산과 가장 큰 아이디어를 한 번에 쏟아붓는 자리다.
그래서 슈퍼볼 광고는 제품 소개 영상이라기보다, 그 브랜드가 올해 어떤 태도를 가졌는지, 어떤 감정과 세계관을 대중에게 선언하려는지 보여주는 일종의 연례 발표처럼 보인다. 사람들이 슈퍼볼 광고를 유독 기억하고 평가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광고 자체가 매년 리뷰의 대상이 되고, 좋은 광고는 다음 날 뉴스와 대화의 소재가 된다.
이런 무대에 올해는 AI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관객의 시선도 달라졌다. 사람들은 광고를 작품처럼 감상하기 전에 먼저 확인한다. 이거 AI냐, 아니냐. 여기서 중요한 변화는 AI가 몇 편의 광고를 만든 것이 아니라, 관객 안에 의심의 표준을 만들어버렸다는 점이다. 관객의 감각이 예민해지면, 조금만 매끈해도 합성으로 의심하고, 조금만 비현실적이어도 AI 같다고 말한다. 즉, 광고의 첫 관문이 메시지가 아니라 제작 방식이 된다. 이때 브랜드는 불리해진다.
광고가 해야 할 일은 설득과 몰입인데, 관객의 머릿속에서는 감별과 의심이 먼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슈퍼볼에서 일부 브랜드가 짧은 시간, 적은 비용, 빠른 제작을 혁신의 메시지로 내세울 때 역효과가 생기기 쉽다.
제작자에게 빠르게 만들 수 있다는 자랑은 기술의 진보이지만, 관객에게는 공을 덜 들였다는 신호로 번역되기 쉽다. 특히 슈퍼볼은 비싼 30초라는 상징을 갖고 있다. 그 상징이 의미하는 것은 그저 돈을 썼다는 자랑이 아니라, 이 브랜드가 이 무대에 걸맞은 집중과 완성, 그리고 태도를 준비했다는 약속이다.
그런데 속도와 비용 절감을 전면에 내세우면, 그 약속이 흔들린다. 결과적으로 광고가 팔아야 할 품격과 신뢰가 먼저 손상될 수 있다.
슈퍼볼의 교훈은 단순하다. AI 광고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AI가 전면화될수록 브랜드는 더 강한 의미 설계를 요구받는다는 말이다. 기술이 앞에 나오면 나올수록 관객은 더 집요하게 묻는다. 그래서 이 브랜드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약속하는가. 슈퍼볼처럼 '선언의 무대'에서는 특히 그렇다.
이 무대에서 AI는 제작을 편하게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브랜드가 자신의 태도를 더 정교하게 증명해야 하는 시험지가 된다.
이 사례들을 하나로 묶으면 결론이 분명해진다. 많은 사람이 AI 광고에 분노하는 이유는 AI가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브랜드가 지켜야 할 약속을 기술의 편의로 우회한 듯 보이기 때문이다. AI는 제작을 빠르게 하고 표면을 완벽하게 만든다. 그러나 브랜드는 표면이 아니라 관계를 판다.
그래서 AI 시대의 문제는 기술적 완성이 아니라, 브랜드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웠는지에 대한 의미의 설계로 귀결된다. (4편에서 계속)
석수선 디자인전문가
▲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박사(영상예술학 박사) ▲ 디자인 크리에이티브 기업 ㈜카우치포테이토 대표 ▲ 연세대학교 디자인센터 아트디렉터 역임 ▲ 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 ▲ 한예종·경희대·한양대 겸임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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