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불편하시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본인 제공]
지난 칼럼에서 밝힌 대로 인류는 오래전부터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해왔다. 과학이 없던 시대, 신화는 세계의 원리를 설명하고 인간에게 삶의 질서를 제시했다.
하늘의 번개가 신의 분노로, 바다의 파도가 신들의 다툼으로 해석되던 시절, 사람들은 이야기로 공포를 다스리고 혼란을 통제했다. 신화는 공동체의 교과서이자, 무의식적인 사회 규약의 근원이었다.
신화의 탄생에는 늘 '과장'이 함께했다.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자, 영웅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집단, 초자연적 기적을 봤다는 증언까지. 이 구전의 연쇄는 세대를 거치며 더 화려하게 변주되었다. 그것은 기억의 왜곡만이 아니라, 공동체가 자신들에게 필요한 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인간은 현실을 견디기 위해 이야기를 신성화하고, 그 신성함은 곧 권위가 된다. 그렇게 신화는 '설명'을 넘어 '통제의 언어'로 진화했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된다. 미디어가 만든 현대의 신화가 그렇다.
우리는 매일 '현실을 초월한 존재'를 본다. 화려한 조명 아래 완벽한 이미지로 등장하는 아이돌, 실패 없는 CEO, 끊임없이 갱신되는 온라인의 영웅들. 현대의 영웅은 신과 같은 존재감을 갖지만, 그 탄생의 방식은 고대 신화와 다르지 않다. 사회는 그들에게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씌우고, 사람들은 그 이미지를 믿으며 안전한 욕망의 피난처를 얻는다.
SNS 속 '완벽한 일상'은 과거의 신화보다 더 치밀하게 조작된다. 꾸준히 업데이트되는 미디어 서사는 옛날 제사장의 설교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고, 그 체계적인 '이야기 관리'는 결국 현대의 통제 장치가 된다.
신화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규율'이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가 인간의 오만을 경계했고, 한국의 단군 신화가 '홍익인간'이라는 도덕적 방향을 제시했듯, 신화는 늘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암묵적 명령을 품고 있었다. 이야기는 오락이 아니라 행동의 지침이었다. 그리고 그 지침을 어기면 신의 벌, 운명의 저주, 사회의 배척이 기다렸다. 신화는 감시와 처벌을 내면화시켜 스스로를 통제하게 만드는 강력한 장치였다.
이런 규율의 구조는 시대가 변해도 형태를 바꿔 살아남았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신화의 서사는 법과 제도로 변했다. 왕은 신의 대리자로 선언되었고, 법은 '신의 뜻을 인간의 언어로 옮긴 것'으로 여겨졌다. 그렇게 신화는 제도 속에 녹아들었다.
막스 베버가 말한 관료제의 탄생도 이와 맞닿아 있다. 신화적 질서가 기술과 문자를 만나면서, 규율은 '시스템'이라는 이름의 신화로 바뀌었다. 더 이상 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규정과 절차가 신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21세기의 신화는 더 정교해졌다. 알고리즘은 현대의 제사장처럼 우리의 선택을 관리한다. 어떤 영상을 볼지, 누구를 팔로우할지, 무엇을 구매할지를 예측하고 통제한다. 신의 계시 대신 데이터의 확률이 작동한다. 그러나 결과는 같다. 인간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규율' 안에서 살아가며, 그것이 사회의 안정과 효율을 지탱한다.
감시와 처벌의 기능 역시 디지털 사회에서 재현된다. 예전엔 신의 눈이 인간을 지켜봤다면, 지금은 '모두의 눈'이 서로를 감시한다.
SNS의 공개된 공간 속에서 개인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검열한다. 클릭과 조회수, 좋아요의 개수가 오늘의 신성한 심판처럼 작동한다. 사람들이 특정한 행동이나 발언을 스스로 조심하게 되는 이유도 결국 집단의 규율이 내면화된 결과다. 신의 명령은 사라졌지만, 사회적 시선은 더 광범위한 통제력을 얻었다.
이제 신화는 더 이상 옛날 이야기책 속에 있지 않다. 기업의 브랜드 스토리, 정치의 서사, 국가가 만든 국민적 영웅의 이야기까지, 사회는 여전히 새로운 신화를 끊임없이 생산한다. 그 신화 속에는 여전히 '규율'과 '통제'가 숨어 있다.
기업은 '혁신'이라는 단어로 직원의 야근을 정당화하고, 국가는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시민의 복종을 요구한다. 이는 신화적 서사의 현대적 변형이다.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믿음, 목표, 희생을 설명하는 이야기적 장치가 바로 현대의 '시스템 신화'다.
하지만 신화의 모든 기능이 나쁜 것은 아니다. 신화는 사회를 하나로 묶는 접착제이기도 했다. 공동체의 가치와 방향성을 공유하게 만들고, 혼돈 속에서도 인간을 협력하게 만든다. 오늘날 사회의 복잡한 시스템 또한 이 기능 덕분에 유지된다.
다만 문제는 신화가 만들어내는 질서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향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억압될 때, 인간은 자신의 사고와 감정마저 통제당하게 된다.
신화의 통제 구조는 결국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된 사회 기술이었다. 그리고 그 기술은 지금도 살아 있다. 고대의 신전이 자리를 잃자, 정부의 행정 시스템이 등장했고, 또 그것이 디지털 네트워크로 옮겨왔다. 신화가 종이에 적히고, 법으로 기록되고, 데이터로 전환되면서, 통제의 장치는 점점 더 보이지 않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여전히 신화 속에서 산다. 단지 신의 이름이 다른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 이름은 알고리즘일 수도 있고, 정부 시스템이거나, 사회적 규범일 수도 있다.
신화는 죽지 않았다. 기술과 제도를 타고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가 쓴 신화의 등장인물로 살고 있는가."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 소장
▲ 메타버스 및 가상현실 전문가 ▲ 미국 컬럼비아대ㆍ오하이오주립대ㆍ뉴욕 파슨스 건축학교 초빙교수 역임 ▲ 고려대 겸임교수 역임 ▲ 현대자동차그룹 서산 모빌리티 도시개발 도시 컨설팅 및 기획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Copyright 연합뉴스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상품 확인하고 계속 읽어보세요!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