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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불암, 위기의 아이들 구한 '국민 아버지'…"진정한 어른"

입력 2026-10-30 01: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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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운영하던 명동 주점서 예술의 꿈 키워…"'전원일기' 하며 아버지 역할 깨달아"


'최불암 시리즈'로 가부장적 엄숙주의 타파…청소년 위해 저작권도 허락

미아 찾기·비행 청소년 교화에 관심 기울여…"사회적 책무 중요시한 배우계 어른"




'영원한 수사반장'·'국민 아버지' 최불암 별세…향년 87세

(서울=연합뉴스) 한국의 아버지상을 대표해 '국민 아버지'로 불린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이 별세했다. 향년 87세.
30일 방송계에 따르면 최불암은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 29일 밤 10시께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2015년 11월 3일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모습. 2026.10.30 [최불암 측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장진리 기자 = 향년 87세를 일기로 29일 별세한 배우 최불암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국민 아버지'다.


'한국의 아버지상'을 세운 인물이지만 정작 최불암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역할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최불암이 2007년 출간한 에세이 '인생은 연극이고 인간은 배우라는 오래된 대사에 관하여'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최불암이 1939년(호적상 1940년생) 태어나자마자 임시정부에서 일하던 동생을 찾아 상하이로 떠났다가 6살에 돌아왔다.


가정이 안정을 찾았다고 생각할 초등학교 2학년 시절 무렵, 인천에서 신문사와 영화사를 운영하던 아버지는 과로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부처 바위'라는 뜻을 품은 서울시 노원구의 불암산(佛岩山)과 한자까지 같은 이름을 사용하게 된 것도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 때문이다.


2011년 KBS 2TV 예능 '퀴즈쇼 사총사'에 출연한 그는 "아버지께서 서른다섯이란 이른 나이에 돌아가셔서 나 역시 그렇게 될까 두려워 큰아버지께서 '불암'이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이 인연으로 2009년 불암산의 명예 산주(山主)로 위촉됐다. 지금도 산 초입에는 그가 직접 지은 시 '불암산이여!'를 새긴 시비가 자리하고 있다.


홀로 생계를 짊어진 최불암의 어머니는 1955년 문화의 중심이던 명동에서 주점 '은성'을 개업했다. 남편의 영향으로 예술 세계를 이해한 그의 어머니 가게엔 예술가들이 모여들었고, 최불암은 그들에게 낭만과 주도(酒道)를 배웠다.


최불암의 회고에 따르면 문인으론 박인환, 김수영, 박봉우, 천상병 등이, 화가로는 손응성, 이종우, 김환기, 정규 등이 자주 이곳을 찾았다. '명동백작'이라 불리던 기자 겸 소설가 이종구는 단편 소설 '명동 에레지'에 "주인을 비롯해서 비장한 표정으로 대폿잔을 들고 있는 모든 손님이 명동이 아니면 만나지 못할 다정다감한 친구들"이라고 은성의 낭만적 분위기를 남겼다.




배우 최불암의 '전원일기' 출연 장면

[MBC '파하, 최불암입니다'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홀어머니 손에 자란 그는 '전원일기'(1980∼2002)에서 효심 깊은 아들, 여섯 남매를 키워낸 가장, 아내를 더없이 사랑하는 남편을 연기하면서 아버지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는 에세이에서 "제가 어릴 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 역할이 무엇인지, 한 가정 내에서 아버지의 위치가 어떤 건지 잘 몰랐다"며 "하지만 '전원일기'를 하면서 '아버지는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김회장처럼 아이들을 키우고자 했다"고 돌아봤다.


'전원일기'를 통해 찾은 아버지의 역할은 그에게 '국민 아버지'란 수식어를 안겼다. 때로는 엄격하고, 때로는 인자하게 가족과 마을을 품는 너른 마음을 가진 김 회장으로 22년을 살았던 그는 "강하고, 정 많고, 도리에 벗어나는 일 없는 그런 우리의 아버지를 만들어낸 것이 '전원일기'의 가장 큰 보람이 아닐까 싶다"고 떠올렸다.


극중 아내(김혜자 분)를 사랑하는 남편은 인간 최불암과 똑 닮았다.


에세이에 따르면 최불암은 KBS 드라마 '정동마님'에 출연한 아내 김민자를 보고 첫눈에 반했고, 아내를 "내 영혼을 구해줄 천사"로 여겼다.


사랑에 빠진 그는 김민자와 더 가까워지기 위해 "끝까지 연극쟁이로 남겠다"던 의지를 스스로 꺾고 특채로 KBS에 들어갔다. 최불암은 김민자와 드라마 '흙' 등을 함께했는데, 김민자와 연기를 하면서 웃음을 참지 못해 녹화가 중단되는 일도 있었다. 우연을 가장해 데이트하기 위해 김민자의 퇴근 시간을 기다리기도 했다.


두 사람은 1970년에 결혼해 부부가 됐다. 특히 최불암은 처음의 마음을 그대로 유지한 '사랑꾼 남편'이었다.


1974년 신문엔 "항상 신혼부부 못지않은 잉꼬부부"라며 "TV 스튜디오에서 부부가 서로를 너무 위해줘서 타인이 샘을 낼 정도"라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영원한 수사반장'·'국민 아버지' 최불암 별세…향년 87세

(서울=연합뉴스) 한국의 아버지상을 대표해 '국민 아버지'로 불린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이 별세했다. 향년 87세.
30일 방송계에 따르면 최불암은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 29일 밤 10시께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2023년 2월 16일 '서울특별시 홍보대사 감사패 수여식'에 앞서 포즈를 취하는 모습. 2026.10.30 [최불암 측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2017년 KBS 2TV 퀴즈쇼 '1대 100'에 출연한 그는 "고마워, 영원히 사랑할 거야. 내 몸 다 바쳐서"라고 아내를 향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2023년 tvN 스토리 예능 '회장님네 사람들'에선 "지금도 (아내를)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여전한 애처가 면모를 보여줬다.


1990년대엔 구전으로 유행한 '최불암 시리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허무개그와 아재개그가 섞인 이 시리즈는 가부장적 엄숙주의를 타파하는 하나의 현상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최불암은 대중의 웃음을 위해 이 유행에 기꺼이 본인을 내던졌다. 예능 '일요일 일요일 밤에'(1998) 코너에 출연해 '최불암 시리즈'를 기반으로 한 콩트를 선보였고, 출판사에 무상으로 저작권도 허락했다.


그는 "학생들이 만들면서 유행이 됐다"며 "입시 위주의 공부 속에서 학생들이 한순간이라도 즐길 수 있도록"이라고 청소년들을 위해 저작권을 기꺼이 내준 이유를 설명했다.


각별한 인연을 이어온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제안으로 정치에 입문하기도 했다. 그는 정 회장이 창당한 통일국민단 비례대표(당시 전국구의원)로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직을 맡아 정계에 발을 들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 영등포구을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당시 30대 초반의 김민석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에게 패해 본업인 배우로 돌아왔다. 김민석 후보는 "최불암은 무대로 김민석은 국회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이에 대해 최불암은 "'국보급 연기자를 방송으로'라는 표어를 내세워 유세를 한 상대방(김민석)의 전략이 주효했던 것 같다"고 패인을 분석했다.


'전원일기'를 시작으로 '그대 그리고 나'(1997∼1998)로 화려한 복귀에 성공한 그는 에세이를 통해 "'그대 그리고 나'는 선거에서 낙선한 뒤에 심기일전한 작품이기도 했고, 천생 내 직업은 배우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 드라마이기도 했다"며 "낙선 이후, 어떤 분이 내게 '일부러 안 찍었어. 당신은 드라마로 더 큰 정치해야지'라고 말했다"고 떠올렸다.


'전원일기'에선 김회장이 금동이(임호)를 양자로 들이는 사연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 에피소드가 방송된 후 전국 각지에선 최불암을 칭찬하는 편지가 날아들었다.


최불암은 작가가 쓴 내용으로 자신이 찬사를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고민하던 그는 "한 아이를 진짜 도우면 되지 않느냐"며 아동 후원을 시작했고, 그의 두 자녀도 저금으로 후원에 정성을 보탰다.


이 일로 초록우산어린이재단(당시 한국어린이재단)과 인연을 맺은 그는 약 30년간 재단의 전국후원회장을 맡았다.




'엄마, 아빠 저 여기 있어요'에 출연한 배우 최불암

[MBC '파하, 최불암입니다'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개인적 후원 외에도 미아 찾기, 희소병·난치병 어린이 돕기 특별 생방송에 출연하며 국민적 관심을 끌어냈다. 최근까지도 문화예술을 통해 비행청소년들을 교화하려는 사단법인 제로캠프의 이사장을 지내며 위기의 아이들과 청소년을 위해 꾸준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최불암의 행보를 두고 후배들은 '진정한 어른'이라고 칭송했다.


'전원일기'에서 양자 금동이를 연기한 임호는 올해 5월 방송된 MBC 다큐멘터리 '파하 최불암입니다'에 출연해 "배우, 예술가, 연기자이기 때문에 갖는 책무 중에서도 사회적 책무에 대한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배우계의 어른"이라고 말했다.


코미디언 이홍렬은 최불암과의 만남을 계기로 어린이를 위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면서 "돌이켜 보면 행운이었다"며 "나이 들었다고 다 어른은 아닌데, (최불암은) 정말 어른이시다"라고 떠올렸다.


고인은 칠순을 앞두고 쓴 에세이에서 어른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본인의 사명을 돌아봤다. 젊은 시절엔 연기자로 시간을 보냈고, 이젠 자신이 살아온 경력과 지혜를 전하는 노인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라는 것이다.


"저는 그동안 많은 분들께 과분한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이제 돌이켜 보건대, 개인적 명분은 더 이상 제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국민이 모두 힘내서 갈 수 있는 내일의 지평을 여는 데 보탬이 된다면 남은 힘 모두 쏟아붓는 것이 제게 주어진 일이라 믿습니다."


ma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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