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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의사·밀정·킬러까지…안방극장 장악한 '여성 장르물'

입력 2026-10-18 07: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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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 중심에 선 주체적 여성 캐릭터…전문직·스릴러·시대극 외연 확장


"남성 전유물 깨부수는 카타르시스…연출·서사 노하우 축적되며 깊이 더해"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 계수정 역의 배우 김지원

[S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조윤희 기자 = 최고 난도의 수술을 집도할 능력이 요구되는 수술실. 환자 앞에서 집도의와 의료진이 당황하며 머뭇거린다.


그 순간, 수술실 문이 열리고 천재적인 수술 실력을 지닌 의사 계수정(김지원 분)이 걸어 들어온다. 세밀한 분석으로 이미 환자의 상태를 정밀하게 파악하고 있던 그는 주저 없이 메스를 잡는다.


흐트러짐 없는 손길로 복잡한 혈관을 잡고 신속, 정확하게 수술을 집도해 완벽하게 마무리 지은 그를 보며, 수술실 안팎의 의사들과 병원장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남성 중심적인 보수적 조직 문화 속에서 오직 실력 하나로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순간이다.


지난 9일부터 방송 중인 SBS 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이하 '닥터X')에서는 환자의 질환과 수술 상황은 매번 바뀌지만, 위기의 순간 계수정이 등장해 수술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특유의 전개 구도를 보여준다.


기득권과 권력 다툼이 팽배한 대형병원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도 단호한 판단력과 독보적인 실력으로 환자의 생명을 구하고 판을 뒤흔드는 이 '천재 의사'의 활약은 시청자들에게 매주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고 있다.


닥터X'는 첫 회 시청률 11.4%(전국 기준)를 기록, 단숨에 10%를 돌파하며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동시 공개 중인 넷플릭스에서도 비영어권 TV쇼 부문 1위에 오르며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 뜨거운 흥행세를 보이고 있다.




tvN '100일의 거짓말', SBS '굿파트너2' 포스터 (왼쪽부터)

[각 방송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최근 안방극장에서는 전문성과 결단력을 갖춘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 정면 돌파하는 '여성 장르물'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의학·액션·스릴러·첩보 시대극 등 선이 굵은 장르물 전반에서 여성 주연작들이 동시에 대거 등장하며 방송가의 뚜렷한 주요 흐름으로 자리 잡은 모습이다.


'닥터X' 후속으로 선보일 SBS '굿파트너2' 역시 강렬한 카리스마의 여성 캐릭터를 앞세웠다.


지난 시즌 남다른 '워맨스'(Womance·여자들 사이의 진한 우정과 연대)를 보여준 데 이어, 이번에는 이혼 전문 로펌을 통해 홀로서기에 나선 스타 변호사 차은경(장나라)과 베테랑 경력직 변호사 강혜성(김혜윤)이 새롭게 호흡을 맞춘다.


법정이라는 냉혹한 필드에서 전문성을 무기로 판을 이끄는 여성 변호사들의 강렬한 케미스트리가 기대를 모은다.


'닥터X', '굿파트너2' 외에도 여성 캐릭터를 앞세운 드라마의 소재와 장르의 스펙트럼은 한층 넓어지고 있다.


지난달 종영한 MBC '유부녀 킬러'는 평범한 주부이자 엄마로 살아가는 일상 뒤편에, 낮에는 가정을 지키고 밤에는 전설의 킬러라는 이중생활을 배치해 독특한 긴장감을 연출했다.


남편에게조차 정체를 숨긴 채 임무를 수행하는 주도적인 모습은 남성 전유물로 여겨지던 스릴러·액션 장르의 틀을 완전히 재구성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방영 중인 tvN '100일의 거짓말' 역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다루는 첩보 시대극 안에서 여성 밀정의 활약을 예고해 기대를 모은다.


여성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감정적인 연기력을 무기로 삼아 적을 교란하고 난처한 상황을 유연하게 극복해나가는 인물의 모습은 기존의 무겁고 딱딱했던 첩보물의 틀을 깨며 색다른 긴장감과 매력을 선사한다.




배우 공효진

['유부녀 킬러'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전문가들은 최근 메디컬, 첩보, 액션 등 다양한 장르에서 여성 주연이 전면에 나서게 된 배경으로 시청자들의 변화된 니즈(욕구)와 연출 노하우의 축적, 사회적 흐름을 꼽았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드라마의 주 시청층이 여성들인데, 여성 캐릭터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던 측면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감정이입을 통해 대리 실현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짚었다.


이어 김 평론가는 "그동안 여성이 중심이 되는 서사 방식과 연출 노하우도 축적된 것 같다"며 "과거 액션물이나 메디컬에서 남성을 기계적으로 흉내 내 비현실적으로 보이던 부분에서 벗어나, 이제는 적절한 카메라 움직임이나 편집, 세밀한 분석력 등 여성성에 맞는 역할을 부여해 캐릭터에 대한 공감도를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자신이 지키지 못했던 아이에 대한 과거 회상이나 엄마이자 아내이기도 한 킬러의 모습 등 여성 서사의 관점이 인물의 행동을 이끄는 '드라이빙 포스'가 되는 점도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역시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지고 여성주의적 시각이 일반화되면서 전통적이고 수동적인 여성상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 시대적 요구가 드라마에 투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 평론가는 "과거 전문직종에서 강하게 상황을 해결해나가는 캐릭터는 주로 남성이 맡았는데, 이를 여성들이 맡게 되면서 고정관념이 깨지고 신선함을 준다"며 "주 시청층인 여성들에게 통쾌함과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며 대리만족의 효과를 내기도 한다"고 평가했다.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 계수정 역의 배우 김지원

[SBS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전문가들은 이러한 여성 장르물이 일회성 트렌드를 넘어 지속적인 호응을 얻기 위해서는 인물의 디테일한 심리 묘사와 개연성 있는 서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평론가는 "기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장르물들은 사건이나 장면 연출에 집중하느라 인물 간 심리나 내적 변화 같은 디테일이 떨어지는 한계가 있었다"며 "살아오면서 느끼는 내밀한 심리와 갈등 같은 디테일이 장르물과 결합해야 여성 서사가 완성될 수 있고, 이것이 체계화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하 평론가 또한 "여성들이 활약하는 모습이 너무 억지스럽게 그려지면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주도적인 캐릭터를 표현해낼 때 이러한 흐름이 자연스럽게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yunn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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