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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주민들 출연…다큐·픽션 모호함 속 생사의 순환 담아
부산국제영화제·무주산골영화제서 평론가상 받으며 주목
독학으로 익힌 영화 작업…"책임질 수 있는 데까지만 연출"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영화 '지난 여름'의 최승우 감독이 지난 5일 서울 중구 소리그림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8.7
mjkang@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허구의 이야기를 만드는 창작자는 신과 같다.
이야기 속 인물의 외모·성격, 세계가 작동하는 원칙까지 모든 것을 관장한다. 그런 만큼 확신을 바탕으로 세계관을 결정지어야 한다.
영화 '지난 여름'의 최승우(34) 감독은 이와는 정반대의 태도를 지녔다. '세계를 이렇게 만들면 된다'는 확신보다는, '세계를 재현하는 것이 맞느냐'는 신중함이 앞선다.
그런 그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실제 삶을 담아야 했다. 강원도 홍천군을 배경으로 한 '지난 여름'에서는 실제 주민들이 농사를 짓고 정자에서 쉬고 대화하는 일상의 장면들이 나온다.
통상의 극영화들이 지명을 모호하게 처리하거나 가상의 장소를 설정한 것과 달리, '성산로'로 시작하는 도로명 주소 표지판과 '화천면행정복지센터'를 보여주며 배경이 홍천군인 점도 숨기지 않는다.
허구의 서사를 지닌 '지난 여름'은 그렇게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에 서서 관객들에게 다가간다.
"실제 사는 분들의 삶을 보며 제가 느끼는 것을 영화에 담아야 했어요. 이것을 (배우 연기로) 재현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게 재현할 자격도 없고요."
'지난 여름' 개봉일인 지난 5일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최승우 감독의 말에는 영화를 만드는 데 대한 겸허함이 묻어났다. '진인사대천명'이라며 하늘의 뜻을 따라 농사를 짓는 농부의 마음을 닮아 있었다.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영화 '지난 여름'의 최승우 감독이 지난 5일 서울 중구 소리그림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6.8.7
mjkang@yna.co.kr
'지난 여름'은 작은 농촌 마을에서 살아가는 청년 민우(김민혁 분)의 이야기를 그렸다. 화천면 행정복지센터에서 근무하던 그는 모종의 이유로 일을 그만두고 아버지의 농사일을 돕기 시작한다.
최 감독이 이 영화를 구상한 계기는 밥이었다. 어떤 작품을 만들지 고민하던 때 밥을 먹다가 쌀농사를 지으며 순리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떠올렸다.
"'내가 뭐라고 영화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느냐'는 마음도 있었어요. 그분들의 삶을 보고, 제가 느끼는 게 있었으면 했죠."
최 감독이 농부들을 보러 향한 곳은 외갓집이 있던 홍천군이었다. 그는 그곳을 둘러보며 작품을 구상해갔다.
홍천군에서 촬영하기 위해 가장 중요했던 것은 마을에 살고 있는 어르신들이었다. 실제 삶을 담으려는 최 감독에게 그분들의 출연이 영화 제작에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최 감독은 "그분들이 출연을 고사하면 영화를 만들 수 없었다"며 "조용한 마을이어서 그런지, 젊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면 관심도 가져주시고 말도 붙여주셔서 섭외가 어렵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그는 카메라 앞이 어색한 어르신들을 위해 묘안도 짜냈다. 그는 카메라 촬영을 시작한 뒤 어르신들 곁으로 다가가 준비한 질문으로 대화를 끌어냈다. 더 이상 카메라가 어색하지 않고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 최 감독은 프레임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그렇게 해서 "사람이 20% 농사짓고, 하늘이 80% 농사짓는 거다"라는 영화 속 대사가 각본이 아닌, 어르신들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왔다.

[시네마토그래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영화에는 허구의 서사를 수행하는 배우도 있다. 민우 역의 김민혁을 비롯해 민우 아버지 역의 문영동, 민우 친구 역의 김현섭 등이 출연해 농촌 속 사람들을 재현했다. 최 감독의 오랜 친구인 김민혁과 후배 김현섭은 제작에도 도움을 줬다.
서사는 생사의 순환을 담고자 하는 최 감독의 의도에 따라 구성됐다. 민우가 겪는 내면의 갈등, 누군가의 죽음 등이 시간 순서에 따라 펼쳐진다.
다만 극 중 민우를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는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 이 또한 영화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려는 최 감독의 태도가 녹아있다.
최 감독은 "농촌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자세한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제가 그만큼 잘 알아야 한다"면서 "책임을 질 수 있는 데까지만 카메라가 다가서려고 했고 이야기도 그렇게 풀렸다"고 설명했다.
카메라도 고정된 채 풍경을 조심스럽게 응시한다. 팬(위치를 고정한 채 몸체를 좌우 방향으로 회전시키는 촬영 기법)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렇게 허구의 서사와 실제 주민들 삶의 모습이 어우러져 생사가 교차하는 여름날의 풍경을 그렸다. 민우네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가뭄과 장마 속에서 추수로 이어지는 농사의 여정을 밟는다. 축사에서 애지중지 키우던 소를 떠나보내기도 한다.

[시네마토그래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2022년 5∼10월 촬영을 마친 최 감독의 첫 번째 장편 '지난 여름'은 그다음 해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크리틱b상, 2024년 제12회 무주산골영화제 영화평론가상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최 감독은 "앞으로 영화를 더 만들 수 있겠다 싶어서 다행이었다"며 "'하고 싶은 대로 만들었네'라면서 응원해주신 것 같다"고 웃음 지었다.
최 감독은 영화를 어디에서도 배운 적이 없다. 스물네살 때 자신 안에 있는 것을 표현하고자 한 게 작업의 시작이었다. 시급을 많이 주는 조선소로 내려가 일하면서 카메라를 샀고 배우 김민혁과 여러 습작을 하며 스스로 영화를 터득해나갔다.
차기작은 '겨울날들'로, 올 연말에 개봉을 계획하고 있다. 배경이 겨울날 도시로 '지난 여름'과는 대척점에 있는 연작이다. '지난 여름'을 되돌아보는 마음으로 찍은 작품이라고 감독은 설명했다.
"'지난 여름'의 이면을 보여드리고 싶어 만든 영화예요. 앞으로도 제 생각을 계속 연결 지으며 작품을 만들어가지 않을까 해요."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영화 '지난 여름'의 최승우 감독이 지난 5일 서울 중구 소리그림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8.7
mj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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