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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명맥 잇는 한국 전통주연구소 탐방
(예산=연합뉴스) 이동경 기자 = 우리 고유의 가양주와 전통주의 명맥은 어떻게 되고 있을까.
섞어 마시고, 만취하는 술 문화가 만연한 요즈음이라 더욱 궁금하다.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진이 술을 빚으러 온다는 한국전통주연구소를 찾아 우리 술 부흥의 희망을 더듬어봤다.

술을 빚기 위해 전통주연구소를 찾은 그룹 BTS의 멤버 진[사진/한국전통주연구소 제공]
◇ 예산으로 내려간 전통주연구소
예산역에서 산성천길 방향으로 7~8분을 걸으면 적벽돌 건물을 만난다. 과거 잎담배를 보관하고 관리했던, 이른바 엽연초(葉煙草) 건물이다. 이곳에 한국전통주연구소(소장 박록담)가 자리 잡고 있다.
흰색 생활 한복을 입은 '전통주 명인' 박록담 소장이 전통주 이수자 과정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박 소장은 전통주 및 가양주 제조법 발굴과 계승 발전에 40년째 몸담고 있다. 연구소는 박 소장이 1999년 국내 최초로 설립한 전통주 전문 교육기관이다. 서울 종로시대를 마감하고 2년 전 예산으로 이사를 왔다.
잎담배와 전통주는 모두 발효와 식물 원료를 기반으로 한다. 한쪽은 일제 수탈과 전매의 상징이고, 다른 쪽은 일제에 의해 말살된 가양주 문화를 복원하는 기관이다. 엽연초 건물에 연구소가 들어간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가양주 제조 레시피 진열대[사진/임헌정 기자]
◇ 사라져가는 가양주
박 소장에게 인사를 건네자마자, 건물 내부 전통주 교육실습장 입구 벽면의 나무 선반에 다닥다닥 진열된 수백개의 유리병이 무엇인지 물었다. 밀봉된 200ml 정도 크기의 유리병에는 이강주, 감홍주, 제비꽃술 등 각종 술 이름과 제작 날짜가 병에 붙인 한지 위에 붓글씨로 적혀있다.
박 소장이 20년간 전국을 돌며 발굴한 가양주 제조 레시피를 재현한 것이다. 가양주란 말 그대로 집에서 빚는 술이다. 순수하게 곡식과 누룩, 물을 원료로 발효시켜 숙성한 술이다.
고려시대에 증류법이 도입된 후 가양주 문화는 조선 후기까지 전성기를 이뤘다. 그러나 1907년 조선총독부가 주세령을 강제집행 하면서 위기를 맞았고 밀주 형태로 명맥을 이어갔지만, 일제의 단속과 해방 후 양곡 부족으로 인해 가양주는 점점 종적을 갖추게 된다.

전통주연구소에 보관된 각종 전통주[사진/임헌정 기자]
◇ 소줏고리 시연
박 소장은 '우리술 103가지', '꽃으로 빚는 가향주 101가지' 다양한 저서를 통해 가양주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이날 박 소장은 소줏고리로 소주(燒酒)를 내리는 전통 증류 방식을 시연했다. 옹기로 제작된 소줏고리는 밑이 뚫린 절구통 같은 모양을 띤다. 박 소장은 소줏고리를 번쩍 들어 양은 들통 위에 올렸다. 들통 안에는 밑술인 청주와 물이 섞였다. 들통을 가스 불로 가열하자, 10여분 뒤 귀때로 방울방울 소주가 떨어진다.
피노키오의 코처럼 툭 튀어나온 귀때는 알코올 증기가 소줏고리 윗부분 냉각수의 찬물에 닿아 액화한 뒤 흘러내려 떨어지는 관 역할을 한다.
냉각수가 차갑지 않으면 소주 도수가 낮아지고 술의 맛이 떨어진다. 냉각수 안에 물이 꽝꽝 언 1.5리터들이 페트병 3개를 담아둔 이유였다. 소주가 귀때로 떨어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지자 불을 약하게 조절한다. 알코올은 물보다 빨리 기화하는데, 불이 너무 세서 청주에 섞인 물까지 증발하면 술의 도수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소주 내리기 시연을 하는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사진/임헌정 기자]
소주는 이슬처럼 받아낸다고 해서 노주(露酒), 증기를 액화시킨 술이라고 해서 기주(氣酒), 불로 가열한다고 해서 화주(火酒) 등으로 불린다.
박 소장은 고량주 잔 크기의 작은 사기 술잔에 귀때로 떨어지는 소주를 몇방울 받아 마셔보기를 권했다. 독특한 향이 입안을 감싼다. 이어 목구멍부터 식도까지 타들어 가는 느낌을 받는다. 알코올 도수를 재보니 60도였다. 귀때로 처음 떨어지는 소주는 80도까지도 나온다고 한다.
초파리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와 귀때 끝을 맴돈다. 첨가물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소주라는 사실을 초파리가 알고 귀때에 달라붙는다고 박 소장은 설명한다.

한국전통주연구소의 전통주 이수자 과정 수업[사진/임헌정 기자]
◇ 순수한 술들
예로부터 쌀은 고두밥, 죽, 인절미, 개떡, 백설기, 구멍떡, 물송편, 범벅 등 8가지의 형태로 만들어 전통주를 빚었다. 발효제로 사용하는 누룩은 밀 누룩이 80% 이상이었고 나머지는 보리누룩이었다.
멥쌀을 곱게 갈아 뜨거운 물을 부어 범벅을 휘젓는 장면과 고두밥을 쪄서 말리는 장면, 15도 온도의 발효실 내부 항아리에서 익어가는 술들도 공개됐다.
고두밥에 누룩과 물을 섞어 만든 술에 국화를 넣으면 국화주, 진달래꽃을 넣으면 두견주, 송순을 넣으면 송순주, 연잎을 넣으면 연잎주가 된다. 이러한 것들이 가향주다. 박 소장은 가향주 101가지를 저서에서 소개하고 있다.

멥쌀 범벅을 만드는 박록담 소장[사진/임헌정 기자]
박 소장은 '세상만사'라는 이름의 13도짜리 탁주와 18도짜리 '나비의 꿀단지'라는 약주를 꺼내 맛을 보게 했다. 유기농 찹쌀과 멥쌀, 전통 누룩으로 만든 세상만사는 감미로운 맛과 함께 부드러움 목 넘김을 선사했다.
나비의 꿀단지는 유기농 찹쌀과 멥쌀, 전통 누룩을 재료로 한 증류식 소주로, 수십 가지의 국내산 야생화 꽃씨가 가미됐다고 한다. 오묘한 향은 쉽게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꽃씨는 어떠한 것들이 들어갔느냐는 물음에 박 소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비법을 공개하기를 꺼리는듯했다. 사시사철 피는 꽃으로 술을 빚어 마시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박 소장은 말한다.

한국전통주연구소에 전시된 전통주들[사진/임헌정 기자]
◇ '소맥 문화' 유감
지난 27년간 박 소장으로부터 전통주 교육을 받은 사람은 3만명 정도 된다.
"소맥 문화는, 참…." 박 소장은 맥주와 소주를 타서 물같이 마시고 빨리 취하는 술 문화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내면서 젊은이들을 상대로 한 전통주 체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글로벌 아티스트인 BTS의 진(Jin)은 3년 전 요리연구가 백종원 씨의 소개로 박 소장을 알게 된 뒤 술 담그는 법을 배워 군에 입대하기 전부터 술을 빚으러 가끔 찾아온다고 한다. 전통주를 체험한 'MZ세대'들이 인식이 바뀌는 경우도 많다고 박 소장은 귀띔했다.
박 소장은 싸구려 술을 입에 들이붓지 말고 좋은 술을 음미할 것을 권한다. 좋은 술을 접하게 되면 과음 습관도 줄어들게 된다고 박 소장은 설명한다. 전통주에는 어떤 안주를 곁들여야 하냐는 질문에 박 소장은 농산물이든 해산물이든 제철 산물이 제격이라고 답한다.
잡지사 기자를 하다가 전통주의 세계로 빠져든 박 소장은 술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한잔 마시면 얼굴이 달아오르고 알레르기가 생길 정도로 약한 편이다. 박 소장이 그 많은 술을 빚으며 시음은 어떻게 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인터뷰하는 박록담 소장[사진/임헌정 기자]
◇ 막걸리 청년의 의지
연구소를 나와 예산시장의 전통주 전문 상점인 백술 상회를 찾았다. 전국의 전통주와 첨가물이 없는 순수 막걸리가 빼곡하게 진열돼있다. '막걸리 청년'이라 불리는 양조 기업인 박유덕 대표가 운영하는 곳이다. 그는 골목양조장(제조업)과 백술상회(소매업) 등 사업장을 운영하며 예산 지역의 농산물을 활용한 술을 전국에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박 대표는 지역의 가치를 술이라는 매개체로 표현한 상품을 꾸준히 선보이고, 세계시장에도 내놓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전통주 문화를 꿋꿋이 개척하는 젊은 기업인의 의지가 예산에서 빛나고 있다.
시장 내 장터광장에 젊은이들의 막걸리 자리가 흥겹다. 우리 술 르네상스의 미래가 엿보인다.

백술상회 발효실[사진 임헌정 기자]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7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opem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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