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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란 12.3' 연출…"사진 속 군인의 무심한 눈길, 제작 출발점"
내레이션 없는 시네마틱 형식…기획에 김어준 참여·시민 1만5천명 크라우드펀딩

[프로덕션 에므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2024년 12월 3일 이를 해제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 의원들이 모여 있다. 계속 기다려도 전자투표 시스템에 올라오지 않은 해제 요구 결의안에 의원들은 답답해한다.
이러는 사이 국회 본청에 들어온 계엄군은 전기를 차단하기 위해 지하 1층으로 향한다. 계엄 해제 결의안에 투표하려는 의원들과 군인들이 교차 편집되며 다큐멘터리 영화 '란 12.3'은 보는 이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통상 생각하는 다큐멘터리라기보다는, 극영화에 가까운 문법이다.
'란 12.3'의 이명세 감독은 이런 연출이 비상계엄 사태를 지켜보며 들었던 감정을 담아내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설명했다.
13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 감독은 "제가 TV를 보면서 느꼈던 답답함과 긴장감을 오롯이 집어넣고 싶었다"며 "수많은 사람이 손에 땀을 쥐었던 가결의 순간까지 그 느낌을 그대로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란 12.3'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맞서 저항한 이들의 현장 기록을 담은 작품이다. 작품 제목의 '란'(亂)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서 착안했다.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것을 시작으로 국회의원과 보좌관, 시민들이 국회로 가서 계엄을 해제하려는 과정이 숨 가쁘게 펼쳐진다.

[프로덕션 에므 & 웩더독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당시의 순간들을 되살리기 위해 국회 보좌관이 계단에 뛰어오르는 장면 등은 추가 촬영했다. 일인칭 시점에서 나오는 화면은 당시 긴박감을 전해준다.
이를 비롯해 애니메이션, 인공지능(AI) 등 다양한 방법이 쓰였지만, 영화의 기본 재료는 당시를 담은 실제 영상들이다. 280여명의 시민이 제공한 영상과 기록 등이 바탕이 됐다.
이 감독은 C(Cinematic·영화적), E(Emotion·감정), D(Dramatic·극적), H(Humor·유머)라는 네 가지 원칙을 갖고 영상들을 편집했다고 설명했다. 보좌관이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가운데 욕설을 내뱉으며 관객에게 웃음과 긴장감을 함께 안겨주는 장면들은 이런 결과 탄생했다.
한편으로 영화에는 윤 전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당시 계엄을 모의한 사람들을 풍자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이 감독은 "우화처럼 제 나름대로 가졌던 느낌을 압축시켰다"며 "그림자처럼 일렁이는 느낌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감독의 역할은 현장을 디테일하게 보여주는 것이지, 판결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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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독이 이번 영화를 만든 계기는 CCTV에 담긴 하나의 이미지였다. 비상계엄 당시 유튜브 방송 '뉴스공장'을 만드는 스튜디오 건물 앞에 계엄군이 서 있는 사진이다.
그는 "그 앞에 찾아온 군인의 무심한 눈길이 두려웠다"며 "그 느낌이 제 기억 속에 있던 부끄러움을 끄집어냈다"고 떠올렸다.
이 감독은 유신 시대, 제5공화국 등을 겪어오며 항상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질문을 던졌다며 이번에도 그런 인식이 제작의 출발점이 됐다고 했다.
기획에는 '뉴스공장'을 운영하는 김어준 씨가 참여했다. 시민 1만5천여명이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을 후원했다.
영화는 그렇게 내레이션과 인터뷰가 없는 '시네마틱'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다큐멘터리로 탄생했다.
이 감독은 "영화 일을 하면서 늘 질문하는 건 '새롭지 않다면 내가 왜 하지'라는 것"이라며 "다큐멘터리라면 내레이션과 재연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없는 새로운 형식에서 일단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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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독은 1988년 영화 '개그맨'으로 데뷔해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형사 Duelist'(2005), 'M'(2007) 등으로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며 40년 가까이 한국 영화계를 지켜왔다.
그는 한국 영화 시장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저변이 넓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감독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넷플릭스 등의 자본이 들어오면서 (배우들) 출연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를 한국 영화에 적용하면 제작할 수가 없다"며 주 52시간 노동 제도 등으로 제작의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천만 영화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관객 300만 영화 10편이 더 중요하다"며 "독립 예술영화들을 100만명씩 보는 게 자리 잡아야 한국 영화가 건강해진다"고 덧붙였다.
이 감독은 새로운 형식의 영화도 끊임없이 나와야 한다며 이번 영화도 그렇게 인식되길 바랐다.
"배우에 누군가를 적어야 했는데 우리 스태프가 '시민들'이라고 하더군요. 저희는 시민들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벨상도 받고 주연상도 받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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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counter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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