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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패러디 'B급 감성' 광고 히트 행진
불황 속 '병맛' 코미디로 대중에 웃음 선사
"짧아진 소비자 주의력에 대응 위한 전술"
"젊은 세대 B급·병맛 콘텐츠 공유 즐겨"

[롯데칠성주류 공식 유튜브 채널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인턴기자 = ## 핑크 블라우스를 입은 여성이 새침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며 턱을 괴고 있다. 그는 이어 깜찍하게 눈웃음을 짓더니 "당연히 첫 잔은 원샷이겠죠?"라며 '치명적인' 애교를 부린다.
분명 2017년 미쓰에이 출신 배우 수지(31)가 출연해 화제를 모은 소주 광고다. 그런데 아니다. 여성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수지가 아니라 개그우먼 이수지(41)다.
소주 브랜드 '처음처럼'이 출시 20주년을 기념해 지난달 22일 유튜브에 공개한 이 패러디 광고는 9일 현재 누적 조회수 1천30만여회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화제를 모으고 있다.
패러디·풍자를 내세운 'B급 감성 콘텐츠'가 최근 광고계를 중심으로 봇물 터진 듯 이어진다.
경제 불황 속 각종 포모(FOMO·소외 공포감)로 힘 빠진 이들에게 이른바 '병맛'(맥락이 없어 어이 없게 만드는 재미) 콘텐츠가 잠시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며 호응을 얻는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대중은 정형화되고 꽉 짜인 콘텐츠보다는 B급 감성에서 일탈의 즐거움을 더 크게 느낀다"며 "젊은 세대는 기존 전통 미디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B급·병맛 콘텐츠를 접하고 직접 공유하는 행위를 즐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롯데칠성주류 공식 유튜브 채널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 "미치겠다 너무 재밌다"…조회수 1천만회
'처음처럼'은 '이수지 패러디 3종 소주 광고 세트'를 내놓았다.
두번째 광고에서 이수지는 맨발에 하얀 홀터넥 원피스를 입고 그네를 탄다. "더 부드럽게 내려간다"는 내레이션에 맞춰 소주잔을 든 채 '치명적인' 표정을 짓는다. 이는 2021년 블랙핑크 제니가 출연했던 광고를 패러디한 것으로 누적 조회수 1천70만 회를 넘었다.
이수지는 또 2007년 화려한 링 귀걸이·배꼽티의 가수 이효리가 골반을 신나게 흔들며 "처음처럼은 흔들어야죠!"라고 외친 광고도 재현(?)해 조회수 710만여 회를 기록했다.
이들 광고의 유튜브 댓글 창에는 "광고를 직접 검색해서 찾아보기는 처음", "이야 지금까지 소주 광고 중 최고닷", "음주 안하는 사람인데 마시고 싶어지네 너무 웃기심", "미치겠다 너무 재밌다", "광고방송 10번 보긴 처음이다", "웃음포인트가 몇개야" 등 폭소가 쏟아졌다.
직장인 백모(34) 씨는 "예쁜 모델이 잔을 들고 '부드럽다'고 말하는 뻔한 소주 광고의 공식이 있었는데, 이수지가 그 표정과 분위기를 따라 하니까 오히려 유쾌하고 기억에 남았다"며 웃었다.
대학생 강모(22) 씨도 "소주 광고 특유의 눈빛과 머리 넘기는 느낌을 너무 정확하게 짚어내서 재미있었다"며 "술자리에서 이 소주를 한 번 더 찾게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컨디션 공식 유튜브 채널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달 13일 공개된 숙취 해소제 '컨디션'의 광고는 장원영·카리나·설윤·유나 등 K팝 대표 미녀 4인방의 앞 글자를 딴 신조어인 '장카설유'를 어처구니 없이 비틀었다.
'장카설유' 섭외가 안 돼 쩔쩔매던 광고 기획사에서 한 직원이 대안으로 장기하·카더가든·설운도·유병재를 섭외해 온다는 황당한 내용이다. 이 광고의 예고 영상은 550만여 회, 본 영상은 290만여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직장인 최모(31) 씨는 "상사가 무리하게 '장카설유'를 던지고 직원들이 난감해하는 장면이 실제 회의 같아서 웃겼다"며 "전혀 예상치 못한 조합의 인물들이 등장해 신선했고 뇌리에 확실히 박혔다"고 말했다.

[SK텔레콤 공식 유튜브 채널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톱스타도 뛰어들었다.
지난달 12일 공개된 SK텔레콤의 'T로밍' 광고는 공항에서 캐리어를 끌고 가던 남자가 스마트폰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자 난데없이 "스마트폰 발사!"를 외치고 망토를 두른 왕자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내용이다. 남자는 캐리어 위에 올라타 눈에서 레이저를 뿜기도 한다.
유튜브에서 조회수 1천130만 회를 돌파한 이 광고의 주인공은 배우 지창욱이다.
댓글창에는 "잘생긴 지창욱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형님의 열정 잘 배웠습니다", "찐이다…충격적이라 광고내용이 너무 머리에 박힘", "커피 마시다 뿜을뻔", "눈을 뗄수가 없네…잘생긴 도른자" 등 감탄이 이어졌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은 기대에서 벗어나는 순간 느끼는 '반전의 쾌감'을 좋아한다"며 "최근 대중은 연출된 신비주의를 더 이상 신뢰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짚었다.
이어 "잘생기고 신비로운 이미지의 배우가 그 이미지를 탈피해 B급 감성으로 변신하면, 대중은 오히려 가식 없는 모습으로 받아들이며 더 큰 호감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G마켓 공식 유튜브 채널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G마켓이 지난달 1일 공개한 '빅스마일데이' 광고도 '얼굴에 철판을 깐' 패러디의 향연이다.
광고에서 장항준 감독이 촬영하는 영화 속 배우 박성웅은 영화 '신세계'의 명대사인 "살려는 드릴게"를 패러디, 순살치킨을 손에 들고 "살로만 드릴게"라고 외친다.
배우 장혁은 자신의 대표작인 KBS 2TV 드라마 '추노'의 애절한 OST를 배경으로 우수에 찬 눈빛을 보이다가 '추노'의 대사 "얼마나 좋아" 대신 "알 많아 좋아! 알로에 좋아! 알타리 좋아! 울샴푸 좋아!"를 외치며 상품을 홍보한다.
드라마도 있다. 지난달 시작한 tvN '취사병 전설이 되다'는 'B급 코미디'로 드라마 화제성 1위를 달리고 있다. 기관총 대신 소시지 총알이 날아다니고, 환상적으로 맛있는 미역국을 먹은 이가 '미역국 천지창조'를 상상하는 식이다.
지난해 전역한 대학생 박모(25) 씨는 "군대 드라마라고 해서 사실적인 묘사를 생각했는데, 예상 밖의 장면이 많았다"라며 "말도 안 되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배우들이 너무 진지하게 연기하니까 오히려 카타르시스와 웃음이 터졌다"고 말했다.

[tvN DRAMA 공식 유튜브 채널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 "B급 광고, 간헐적으로 적절한 시기에 활용해야"
B급 감성 콘텐츠가 유행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트렌드 쫓기에는 명확한 한계가 따른다고 경고한다. 웃기는 데만 치중하다가 정작 알려야 할 내용이 묻혀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케팅 업계 종사자인 유모(28) 씨는 "예전에는 식품이나 제과류처럼 가볍게 소비되는 제품에 B급 감성을 썼지만, 최근에는 그 분야가 넓어졌다"며 "그러나 광고만 유행하고 홍보하고자 했던 알맹이가 기억나지 않는다면 마케팅 측면에서는 완벽히 실패한 콘텐츠로, 이 균형을 잡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B급이나 병맛 감성을 선택하는 것은 디지털 미디어 환경 변화와 짧아진 소비자 주의력에 대응하기 위한 전술에 가깝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명품 브랜드나 고급 가전, 혹은 신뢰가 최우선인 금융, 보험, 병원, 약품 등의 분야에서 함부로 B급 코드를 쓰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고 브랜드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브랜드 맥락'에 맞는지 여부"라고 강조했다.
심성욱 한양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도 "고급 브랜드라 하더라도 소비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표현의 문을 열어두는 추세이긴 하지만, 너무 자주 사용하면 신선함이 떨어지고 브랜드 가치가 저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B급 감성 광고는 어디까지나 간헐적으로, 적절한 시기에 활용할 때 차별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김 평론가는 "하위문화에서 출발한 B급 감성이 주류문화로 확장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면 보편적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B급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인신공격, 사생활 침해, 명예훼손, 혹은 특정 계층에 위화감을 주거나 인권을 침해하는 요소를 담는다면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minj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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